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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심리학 단원정리
    1. 교육학, 심리학, 교육심리학의 학문적 성격을 비교, 설명하여라.교육심리학은 교육현상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학과, 인간행동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심리학의 이론들을 접목시킴으로써 형성된 학문영역이다. 따라서 교육심리학은 교육학의 영역 중 인간의 행동과 관련된 측면을 심리학적인 방법론을 사용하여 이해하려는 학문적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교육심리학은 교육과 관련된 인간행동의 원인을 단순히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교육이란 인간행동의 계획적인 변화를 의도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즉, 교육에는 인간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도와 목적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일반심리학은 교육실제에 내재하는 심리적 현상을 체계적으로 탐구하기보다는 일반심리학적 연구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심리학적 지식을 교육에 직접 응용하는 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 이는 목적과 관심의 차이에 기인하다.첫째, 심리학의 목적은 인간행동에 대한 보편적 원리와 법칙을 확립하는 것인 반면, 교육학은 학습자 개개인의 특성을 변화시키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둘째, 보편적 원리를 확립하고자 하는 심리학은 방법론적으로 정밀성과 경제성을 중요시하며 일관성만 있다면 세심한 변화라도 중요하게 고려한다. 그러나 교육학은 다소 정밀과 경제성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학습자의 행동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는 변인에 관심을 갖는다. 셋째, 특수한 영역을 제외하면 심리학은 가치중립적이며 기술적인 반면, 교육학은 가치 지향적이며 처방적이다. 넷째, 심리학은 통제된 실험실에서 원리나 법칙들이 확립되는 반면, 교육학의 원리나 법칙들은 예측 불가능한 교실상황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기초로 한다.이러한 일반심리학과 교육학의 목적과 관심의 차이 때문에 일반심리학의 지식을 교육에 응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목적과 가치가 개입된 교육활동을 통한 인간행동의 변화를 이해하고 적용하기 위하여 독립된 학문으로서의 교육심리학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일반적인 교육심리학고 있다. 셋째로는 교육심리학의 영역에 관계되어 있다. 이것은 교육의 과정에 있어서 어떠한 영역에 중점을 두는가 하는 것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짐을 의미한다.근래에 와서 교육심리학은 응용만이 아니라 교육현장에 내재하는 모든 심리적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쪽으로 그 음조가 조율되고 있다. 교육심리학을 일반심리학이 연구·확립한 원리를 교육현장에 응용하는 학문이라는 정의에서 벗어나서 교육현장에 내재되어 있는 심리적 현상을 과학적,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한다면, 교육심리학은 교육에서 주도 학문으로서의 지위를 되찾을 수 있고, 따라서 장차 교육심리학의 역할도 클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즉, 교육심리학은 교육의 과정과 방법에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교육심리학을 교육방법의 과학적, 이론적 근거를 확립하고 제공하는 학문이라고 규정하고, 그것을 토대로 하여 교육 실천의 과정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심리학은 교육의 여러 분야 중 가장 과학적이며 실천적이며 가장 교육현장 지향적이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2. 교육심리학의 발전과정을 요약하고, 각 시대별 특징을 설명하여라.. 19세기19세기 초 현대 교육심리학은 생리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등의 연구로부터 그 태동이 시작되었고, 인간 정신을 백지상태로 가정한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철학적 사고가 개념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Kant는 발달심리학들의 이론에 초석이 되었으며, 현대 인지 심리학의 기초를 제공하였고, Herbart는 교육을 체계화하는데 있어 교육목적은 윤리학에서 교육방법은 심리학에 기초를 세워 심리주의 교육학설의 체계를 세웠다. 하지만, 과학적 교육심리학의 기초를 구축한 것은 아니다. 교육현장의 과학적 연구는 그 후 Strumpell, Meumann등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19세기 중엽이후부터 교육심리학은 독립적인 입장에서 과학적 방법의 기초를 갖게 되었다. Wundt는 인간행동과 정신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과 철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는 내성법을 발전시켰고, 가 교육심리학의 형성에 기반을 구축하였다면, 교육심리학을 독립적 학문으로 발전시킨 학자는 Thorndike이다. Thorndike은 필기척도를 제작하였고, 교육측정운동을 통하여 현대 교육심리학을 과학화하는데 공헌한 현대 교육심리학 연구의 창시자이다. 20세기 전반기의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행동주의를 바탕으로 한 학습이론의 형성을 들 수 있다. 이 이론은 러시아의 심리학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Watson에 의해서 미국에서 발전하였다. Watson은 사고라는 정신적 개념을 반대하며,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 자극-반응 패러다임을 사용했으며, 모든 심리적 현상은 관찰할 수 있는 사건들의 결과이고 모든 인지과정은 행동을 수반한다는 철학적 환원주의를 지지했다. 이러한 행동주의에 근거한 학습이론은 Skinner 등에 의해서 발전되었다. 특히 Skinner는 가설적인 이론 구조를 사용하지 않고, 관찰 가능한 명확한 행동을 이용하여 연구하였다.. 20세기 후반기20세기 후반기의 교육심리학에는 수업설계의 발전, 교수과정에 대한 연구 그리고 인지이론의 발전 등 대략 세 가지 큰 흐름이 나타났다.초기 단계의 수업설계는 주로 위계적 분석, 자기보속 수업, 선형계획법, 분지 등과 같은 개념을 사용하여 연구되었고, 50년대 후반과 60년대를 통해 수업설계에 영향을 준 다양한 연구들이 수행되었다. 또한 1960년대 후반에 나타나기 시작한 수업체제에 대한 연구 역시 수업설계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수업설계에 대한 연구는 비용과 질의 조절, 컴퓨터 기술, 의사소통, 관리방법 등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20세기 두 번째 흐름은 교수과정에 대한 연구이다. 이러한 연구 방법들 중 교실에서 발생하는 수업과정을 구조적으로 관찰하는 방법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연구자들은 교실에서 발생하는 과정을 관찰함으로써 학생의 수행 혹은 결과물과 교수 과정간의 상관을 밝히려고 하였다. 이로 인해 과정-산출 연구라는 용어가 생겨났으며, 이러한 연구로부터 외현적인 교사행동과 학생 그리고 이 두 가지 역할 중에서도 교수전문가로서의 역할은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교사의 본질이 교육에 있는 이상, 자신의 맡은 교과목에 대한 사랑과 끊임없는 연구 또는 교육방법의 개선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 하지만 최근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교사의 역할과 지위 또한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사들은 단순히 시험을 준비하고, 감독하고, 성적을 평가, 어느 대학에 갈 수 있는지를 상담해주는 대학진학을 위한 관리자 정도의 역할에 한정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므로 교사의 권위를 살리고, 교수전문가로서의 역할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교사와 학생, 학부모간의 신뢰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청소년 시절에 회의와 불안감, 고민에 싸이게 되고, 독립하려는 의지와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강하다. 이에 교사들은 상담을 통해 학생들의 고민을 같이 해결하면서 신뢰를 쌓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소년 문제와 급속한 사회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학생 상담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상담가로서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교사들이 자신이 맡은 교과목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풍부한 반면 상담이나 생활지도에 대해서는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들을 만나게 되어서 그런지 상담가의 역할에 대해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상담은 문제 행동을 처벌하고 훈육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갖고 있는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을 실현시키는 보다 전문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교사들은 상담의 전문가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한다.. 최근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스스로 생각하는 창조적인 인재를 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교사가 문제를 직접 제시하고, 답을 주는 교수전문가로서의 역할보다 지도에 필요한 여러 가지 객관적이며 사실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보다나은 기술을 제공을 해주는 제공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교사는 보조적 역할과 토론을 중재하고 목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 보고서로 작성해야 할 때의 유의사항을 설명하고 설명 내용이 요약된 지침서를 모든 학생들에게 배부해 준다. 교사의 지도에 의하여 과제를 수행해 가는 동안에 학생들은 학습의 의미에 대한 개인적 체험을 지니게 된다. 과제를 추진하는 특정한 단계에서 학생들은 교사의 요청이 없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추진력에 의하여 높은 수준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러한 목표의 달성을 위해 자기 주도적 학습의 교사 역할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고 하겠다.4. 학교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교육심리학의 학문적인 원리나 이론은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교육심리학은 학습과 교수 그리고 그와 관련된 요인들을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학생들의 심리적 발달에 대한 이해와 학습과정 그리고 학생들이 익혀야 할 지식과 기술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학생의 수행을 평가하고 측정하는데 유용한 기초를 제공한다. 즉, 교육심리학은 학습, 교수, 발달, 동기, 평가 등에 관한 이론을 제공하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교육이란 학생의 학습과 관련하여 학생의 발달 및 개인차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며, 적절한 학습교재가 개발되어야 하고, 수행 결과를 평가하며, 모든 활동을 조직화하고 과제를 적절히 할당하는 등 다양한 활동이 수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모든 활동은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학생들에 관한 세밀한 기록, 효과적인 학급 관리, 학부모와의 면담 그리고 학생들과의 상담 등 실제로 학교에서 담당하는 일들은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이러한 업무를 담당하는 교사는 교과내용에 관한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수업 설계에 대한 전문가이어야 하며, 동기 촉진자로서의 역할도 해야 하고, 학급관리자, 지도자, 상담가 그리고 모델로서의 역할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많은 교사들은 이러한 다양한 역할에 대하여 많은 부담과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교육심리학의 이론은 해당 분야에 대한 연구의 안내자, 사실에 대한 이해의 증진, 사실의 예측
    교육학| 2007.03.25| 6페이지| 1,500원| 조회(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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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봉 정도전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삼봉 정도전은 서얼 출신으로 고려말 최고의 학자였던 목은 이색 밑에서 포은 정몽주와 함께 수학했고, 이후 고려말의 개혁정책과 조선개국에 큰 역할을 했던 인물로 이방원에 의해 제거된 뒤 조선조에서는 오히려 조선개국에 반대했던 포은 정몽주보다도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개국공신으로서 조선의 기반이 되는 여러 제도를 시행했으며, 조선 중기의 사림파들처럼 이념논쟁으로 전락해버린 성리학이 아닌 후기의 실학자들처럼 성리학을 정치현실에 실현시키려 노력한 개혁적 정치가로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도전을 택해 그의 삶 중에서 고려말 토지개혁과 역성혁명에 대한 온건개혁파와 역성혁명파의 대립의 이유와 정도전이 죽음을 맞게 되는 1차 왕자의 난과 관련해 작성해 보았습니다.? 창왕 즉위년 (1388년) 10월 어느날- 토지개혁을 둘러싼 온건개혁파와 역성혁명파의 대립오늘 퇴궐하던 길에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와 함께 스승님(목은 牧隱 이색 李穡) 댁에 들러 식사를 했다. 얼마 전에 명나라에 위화도 회군과 우왕 폐위 그리고 창왕 즉위에 관한 우리나라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사신으로 다녀온 포은에게서 명나라의 정치 상황과 사신길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자연스레 나랏일이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무엇보다 지난 7월에 대사헌 조준(趙浚)이 상소로 올린 토지개혁이 논쟁거리였다.이미 권문세족들이 전국 대부분의 토지를 자기들의 농장으로 삼아서 불법으로 국가에 납부해야할 조세를 포탈하고, 농장에 소속된 농민들 역시 사민화하여 조(租)?용(庸)?조(調) 일체를 납부하지 않아 북으로는 홍건적과 남으로는 왜적들을 맞아 싸울 군대를 유지하는 군수는 물론이고 일상적인 예산도 부족한 판이다. 거기다 이들 농장이 성행해서 종래의 자작농들이 소작농이나 노비로 전락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날로 높아져 가는데 또다시 토지개혁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내가 얘기하자, 스승님은 토지개혁이라는 대전제에는 찬성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준이 제시한 안처럼 무조건적으로 사전을 모두 거둬들여 이를 다시 나눠준다는 것은 너무나 급진적이니, 일단은 사전을 인정하되 다만, 지주와 전호와의 상하관계에서 분(分)의 설정을 지나치지 않게 조정하면 충분할 것이라 하셨다. 여기에 대해 내가 토지개혁의 중심은 농민과 국가의 관계에서 중간의 지주들을 없애서 농민들이 농사를 지은 뒤 바로 국가에 세금을 납부토록 해서 그 세금으로 관리들의 녹과 군수를 유지하는 것이고, 또 농민들이 자작농화 되어야 군역 또한 가능하게 되는 것임을 근거로 조준의 안처럼 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스승님은 여전히 모든 사전을 공전화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급진적이고, 이로 인해 더 정치상황은 혼란될 것이라며 반대하셨다. 듣고 있던 나는 포은이 나의 의견에 동조하기를 내심 바랬지만, 가타부타 찬반의 의견은 내지 않고 듣고 있기만 했다.스승님의 말씀대로 단지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지주와 전호의 분의 설정을 다시 한다고 해서 지금 만연된 토지문제가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터인데, 어찌 그러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대부로서 배우고 익힌 의 이상을 펼치기 위해서는 모두 공전화해서 나눠줘야 백성들도 모두 자작농이 되어 근심걱정 없을 텐데 말이다. 혹시 학문을 수행하던 초심을 잊고 이미 가지고 있는 지위와 권세로 권문세족들처럼 변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도 여전히 청렴하게 지내는 것을 보면 그런 것도 아닌 듯한데.. 그렇다면 스승님은 아직도 이 고려조에 희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공양왕 2년 (1391년) 5월 어느날- 온건개혁파와 역성혁명파 대립의 사상적 이유드디어 그동안의 숙원이던 토지개혁이 마무리되었다. 작년에 기존의 공사전적을 불사르고 이제 새로 기준이 되는 과전법(科田法)이 공포되었다. 과전법의 기본 방향은 네 가지인데, 첫째가 사전을 없애 토지를 공유화하고, 둘째로 이 토지를 모두 균일하게 나누어주어서(균전제), 셋째로 그 토지를 바탕으로 농사를 지어 십일(什一)세법(십분의 일을 세금으로 내는 것)을 실시하고, 마지막으로 자작농이 된 농민들에 대해 불법적으로 수탈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벌써 3년 전에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반대세력들 때문에 질질 끌다보니 기존의 백성 모두를 포함하는 균등한 토지분배 이념(계민수전 計民授田)이 완전히 실행되지 못해서 공전(公田)이 고르지 못하게 되어 불평의 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아마 내가 여기에 책임을 지고 벼슬에서 물러나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이를 통해 과거의 부패한 토지제도는 어느 정도 고쳐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다.어쨌든 드디어 한 가지 숙원이 이뤄지고 그동안 이를 준비하느라 바빠서 찾아가보니 못했던 포은의 집에 들렀다. 그 동안 나의 정책들에 대해 그다지 큰 반대도 찬성도 하지 않던 포은이 근래에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듯해서 의견차도 좁혀볼 요량이었다.내가 은근슬쩍 에서 ‘대의는 부모, 자식 관계에 앞선다.’는 구절을 읊으면서 음서제와 좌주문생제(과거급제자인 문생이 자신을 뽑아준 좌주를 스승처럼 여겨 예를 갖추는 것)을 비판했더니, 포은이 중국 한나라때 관리로 이민족의 침입을 격퇴하였으나 그 와중에 인질로 잡힌 어머니와 처자식이 죽게 된 조포에 대해 ‘어머니를 죽이면서도 공적을 세우는 것이 충이라는 것만 알았지 자신을 보전하며 어버이를 섬기는 것이 효라는 것을 몰랐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고 했다. 부모의 뜻을 따르는 효자의 마음은 곧 혈연의 정, 사적인 정이고 이는 공적이고 사회적인 대의명분과는 구분하여야 하는데 포은은 인정을 중시하는 것 같다.또 포은이 말하길 임금과 신하의 관계도 마치 피로 맺어진 혈연관계와 마찬가지여서 영원불변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는 참으로 답답한 소리다. 무신정권하의 고려왕들은 물론이고 공민왕의 개혁 실패 뒤의 고려왕들이 어떠했는가? 아직도 이런 고려왕들을 믿고 고려를 이어가야 하는가? 백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인정(仁政)을 행해야 하고, 그것은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할 때 인(仁)으로서 채현이 된다.(조선경국전 中) 아무리 임금이라도 하늘의 의지인 천명에 따라 정사를 베풀지 않으면 하늘이 몇 차례 경고를 하고 그래도 그치지 않으면 그 왕조는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게 벌을 내린다고 전한 시대의 동중서도 말하지 않았던가? 천명을 거스르는 고려왕을 내리고 새로운 왕조를 연다고 해서 그것이 폐륜은 아니다. 오히려 천명을 받아 따르는 것이지. 내가 이런 내용의 천인합일설을 설명하며 역성혁명의 당위성을 은연중에 펼쳐보았지만 포은은 끝까지 불사이군(不事二君)하여 신하의 도리를 다함에 그쳐야 한다고 했다. 아마 끝까지 고려의 신하로 남으려는 포은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결국 포은과는 언젠가 적으로 만나게 될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하다.? 태조 7년 (1398년) 8월 26일- 왕권파와 신권파의 대립송현마루에 있는 남은(南誾)의 첩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군사들이 들이닥쳤다. 내가 도대체 어디서 온 군사길래 감히 삼군부 판사를 지낸 나에게 무엄하게 대하느냐고 소리치자 군사들 뒤에서 정안군 방원 왕자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날 꿇어앉히더니 다짜고짜 서얼 출신으로 역시 서얼인 방석 세자와 방번 왕자를 등에 업고, 나머지 다른 왕자들을 죽이려는 역모를 꾀했다고 추궁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아니 역모를 꾀하는 자가 이곳에서 한가하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겠냐고 반문했지만, 정안군도 나도 이 사태의 본질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인문/어학| 2007.02.17| 3페이지| 1,000원| 조회(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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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과학]안락사에 대한 반대입장 평가A+최고예요
    안 락 사 논 쟁-반대입장에서-1. 안락사의 의미 ? 역사적 변천고대 그리스인들의 경우 안락사(Euthanasia)는 “좋은, 행복한, 아름다운 죽음”을, 로마인들의 경우는 “좋은, 영예로운 죽음”을 의미했다. 그런 경우 죽음 이를테면 죽는 방법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특히 의사로부터의 도움과는 무관하였다. 16, 17세기의 토마스 모어, 프란시스 베이컨, 마틴 루터에 있어 안락사의 개념은 이러한 관점에서였다.그러나 이제 안락사는 죽음을 쉽게 해주는 의사의 의무와 관련되며, 이러한 의미의 안락사는 19세기에 기초가 확립되었다. 안락사는 죽어가는 동안의 의사의 진료의무에 대한 지침이며, 간호와 고통을 줄이는 치료나 정신적인 치료에 국한된다.안락사 의미의 결정적인 변화는 20세기초에 일어났으며,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하에 이중의 형태로 확대되었다. 우선 안락사는 생명을 단축하는 죽음에의 도움을 가리킨다. 그 다음 법이론가인 쿠르트 빈딩과 심리학자 알프레드 호헤의 글은 삶의 가치가 없는 생명의 말살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것은 후에 나치의 안락사 정책의 의미로 축소된다. 나치시대에는 안락사에 대해 전혀 공공연하게 논의하지는 않았으며, 안락사는 자비사와 더불어 내부적으로 비공개적이거나 또는 자비라는 이름의 가면을 쓰고 이용되었으며, “사람의 가치가 없는 생명의 말살”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안락사를 “안락하고 평온한 죽음이며 치료가 불가능하고 고통스러운 질병일 경우에 안락하고 평온하게 죽도록 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2. 안락사의 구분 ? 적극적, 소극적 안락사 / 자발적, 비자발적 안락사 / 의사조력자살(1) 적극적인(직접적인) 안락사와 소극적인(간접적인) 안락사대한의사협회의 윤리지침은 약물주입으로 생명을 단축시키는 경우는 금지하고 있으나 치료를 중지하는 경우는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안락사와 소극적인 안락사의 분류 근거를 “죽임(terminating one's life)"과 ”죽게 방치함(letting die)"의 죽이는데 있지 않고 고통을 줄이는데 있었다는 증언을 받아들였다.(2) 자의적 안락사, 반자의적 안락사, 자의와 무관한 안락사자의적 안락사는 개인이 죽음을 선택하고 자신의 선택을 명시할 수 있을 때 이루어진다. 이때 당사자는 명령, 의뢰, 신청 같은 방식으로 안락사를 요청하거나 아니면 소극적인 방식으로 안락사를 승인한다.반자의적 안락사는 개인의 죽음이 당사자의 의지에 역행해서 시행되는 경우이다. 즉 개인이 결코 요구하거나 동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제삼자의 의지에 따라 그 개인의 생명이 제거되는 경우이다.자의와 무관한 안락사는 당사자가 죽음을 선택함이 없이 죽음이 초래되었을 때 일어난다. 즉 당사자가 동의할 능력을 지니지 않아 그가 자신의 선택을 전혀 표현할 수 없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3)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안락사는 환자의 죽음의 최종적인 인과적 단계를 직접 의사가 수행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즉 독극물 주사를 놓는다든가, 산소호흡기를 제거한다든가, 영양공급 장치의 전원을 끈다든가 등의 행위를 의사가 직접 수행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의사원조 자살은 의사가 당사자에게 단지 자살할 수 있는 수단이나 지식을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당사자는 그 수단을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즉 자살하는 것이다.3. 안락사의 현실 ? 세계 각국, 우리나라1989년 전직 병리학 의사 커보키언 박사가 30달러를 들여 고물상과 철물점에서 구입한 재료들로 주방 식탁에서 “자살기계”를 만들어낸다. 이 장치를 통해 1990년 6월 4일 커보키언 소유의 차량에서 발견된 54세의 자넷 앳킨스가 생을 마감한 첫 번째 환자로 기록되면서부터 안락사, 의사조력자살의 논의가 이슈화된다.프랑스에서는 2004년 11월 3일에 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의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을 권리를 규정한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법”을 제정하였다. 의사가 환자의 편안한 죽음을 돕기 위해 인공호흡기만 제거해도 처벌받는 문제점을 고려한 것이다. 그 외에도 환자가 원하면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진통제 처방을 한 후 치료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02년 5월 사망에 임박한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지침을 발표해 논란이 일었다.4. 치료중단에 대한 우리 형법의 법률적 관점우리 법원은 보라매병원 판례에서(2002도995) 가족의 요청에 못이겨 퇴원을 허용한 의사에 대해 살인방조죄 확정 판결을 내렸다. 우리나라도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는 형법상 촉탁살인죄나 자살방조죄가 성립한다. 그러나 소생가능성이 없는 식물상태의 환자에 대하여 인위적인 생명연장장치를 제거하는 것과 같은 존엄사의 경우에는 실제로 병원 등에서 암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실정이고, 이를 실정법으로 처벌하는 경우도 드문 것이 현실이다.환자가 뇌사상태인 경우에는 형법상 환자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치료중단이 허용된다. 환자가 식물인간상태인 경우에서와 같이 동의를 표현할 수 없는 상태인 경우에 환자의 동의를 환자가족이나 친족 기타 관계인의 동의로 대체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 다만 환자가 이미 의사능력이 있는 상태에서 표시한 소위 “living will"이나 추정적 승낙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존중이라는 의미에서 치료중단의 결정에 고려된다. 위에서 언급된 보라매 병원 사례에서는 환자가 의사표현은 불가능하지만, 호전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다른 경우라 할 수 있다.만일 환자가 극심한 고통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인 경우에 의사가 치료중단을 통하여 환자를 사망케 하는 경우에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한다.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진정안락사(치료를 위해 위험한 약물 투여했으나 결과적으로 사망한 경우) 일종의 치료행위로서 살인죄의 구성요건 해당성이 없다고 보아 무죄로 판단한다. 그리고 생명을 단축시키는 안락사의 경우 간접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에는 구성요건에는 해당하나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본다. 하지만, 적극적 안락사의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다고 본다.5. 안락사 시행에 관한 도덕적 기준와 환자가 판단능력을 갖춘 경우에 환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의사나 표현이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닌 이성적인 판단 하에 자율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환자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 경우에는 환자의 자율권과 의사가 생각하는 환자의 최선의 이익 사이의 갈등에서 환자의 자율권을 따라야 한다.② 비판환자의 동의는 ‘충분한 정보에 의거한 동의(informed consent)’여야 한다.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성급한 안락사 희망은 쇠약한 환자들이 성급하게 죽음을 선택하도록 유혹당할 수 있으며, 본인의 의사와는 달리 죽게 될 수도 있다.네덜란드의 경우 주치의 제도가 보편화되어 있어서 안락사 결정과정에서 의사가 환자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거의 전액에 가깝게 의료보험제도가 시행되어서 환자도 자신의 결정에 경제적 영향을 적게 받겠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힘들다. 보라매병원 사례에서도 그렇듯이 영세민의 경우 재정적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2) 삶의 질 원리(quality of life)① 내용어떤 사람들의 삶은 죽음보다 못하다고 평가되고, 그럴 경우 인간은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생명 유지와 의미 있는 삶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생물학적인 의미에서의 생명 유지가 삶의 질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② 비판삶의 질이란 개념을 정확하게 정의하거나 그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개인적인 선호에 따른 자의적인 결정이나 사회적 가치와 기준에 의해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 결코 사회적인 관점에서 개인의 삶이 가치가 있고 없음을 판단할 수 없다. 또한 삶의 질을 고려함에 있어 가족에 대한 부담 등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결정은 타인에 의해 자신의 삶의 가치를 평가받는 것이므로 바람직하지 않다.심한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대부분의 말기 환자들이 일편단심 편안한 죽음을 원하고 있으며, 단지 사회와 법 때문에 자제하고 있을 뿐 이라는 잘못된 인상을 준다. 사실 많야 한다.7. 안락사 반대 논거(1) 생명 존중의 원리인간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가치이다. 따라서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놓여 있고 아무리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타인이 생명을 앗아갈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2) 남용의 우려(미끄러운 경사길 이론 : the slippery slope)① 과거 경험상 장애인, 정신질환자, 난치병 환자, 노인, 영세민 등에게 안락사를 허용하게 될 가능성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커보키언 박사에 의해 삶을 마감한 130명이 넘는 환자들 중 실제로는 아무런 질병이 없었던 사람들도 있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안락사란 미명 하에 나치 정권의 전례도 안락사 남용의 우려가 있음을 보여준다.특히 자율권을 주장할 수 있는 자로 제한 할 경우 유아나 정신질환자 같은 경우 아예 대상에서 제외되겠지만, 노인의 경우 여전히 그 대상에 해당하는데 아래 통계에서 나타나듯이 노인 방치나 학대 그리고 경제적 압박 등을 고려할 때 남용의 가능성이 크다.2002년 통계 노인인구 430만 명, 자살건수 3000여건, 3명 중 1명이 학대 경험(서울신문)가족에 의한 학대 94%, 정서학대 44.3% 방임 29.1% 재정적 압박 13.3% 폭행 11.5% 유기 1.8% (부산일보)만 65세 이상 전체 응답 노인 중 8.2% 자녀나 가족으로부터 학대 경험 있다고 응답(2000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결과)② 소극적인 안락사에 비하여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적극적인 안락사로의 확대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③ 이미 많이 시행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유행과 도덕적 검토 필요의 의미는 다르며, 만약 이를 금지하게 되면 규제가 가능할 수 도 있다. 그리고 많이 시행된 안락사의 경우 이미 진정한 의미(불치의 말기 질병, 극심한 고통 등의 여러 조건)의 안락사에 해당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④ 안락사 주체인 의사에 대한 신뢰가능성 / 의료상 과실 은폐의 수단으로 남용 가능성의사가 바로 환자에게 올바르고 정확한 의학 상태된다.
    사회과학| 2007.02.17| 9페이지| 1,500원| 조회(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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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남한산성 답사기행문 평가A좋아요
    목 차■남한산성 소개■남한산성을 선택한 이유■남한산성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남한산성 남문으로■남한산성 남문에서부터 수어장대로■서문을 거쳐 연주봉옹성으로■서문에서 국청사와 숭열전으로■종각으로 그리고 침괘정과 행궁으로■현절사로■답사를 마치며답사지 : 남한산성답사일 : 2006년 11월 18일교통편 : 지하철 8호선 산성역에서 마을버스 9번 이용■ 남한산성 소개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기 전까지 항전했다고 해서 유명한 남한산성은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24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는데 행정구역으로는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에 걸쳐 있으며 성 내부는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속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남한산성은 한강과 더불어 주요 거점이었다. 그래서 백제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사실이나, 남한산성 안에 백제의 시조인 온조대왕을 모신 사당인 숭열전이 자리 잡고 있는 사실로 볼 때 삼국시대의 백제 때부터 이 지역에 산성을 쌓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 왕조 16대 임금인 인조가 인조 2년(1624)부터 오늘의 남한산성 축성 공사를 시작해서 인조4년(1626년)에 완공하였는데, 이때 산성 내에 행궁을 비롯한 연무관 등을 설치하고 수어사를 임명해서 군사적 요충지로 관리해 왔다. 그러다가 1894년에 산성 승번제도(산성 주변의 승려들로 승군을 조직해서 관군과 함께 산성을 방어하도록 한 제도)가 폐지되고, 일본군에 의하여 화약과 무기가 많다는 이유로 시설들이 1907년 8월에 불태워졌다가 복원을 한 것이 현재의 남한산성이라고 한다.■ 남한산성을 선택한 이유평소 역사에 관심이 있었다고 생각해 왔지만, 막상 조선시대 유적지를 떠올려보니 경복궁 같은 고궁이나 태릉 같은 왕릉, 그리고 좀 멀다 싶은 수원 화성 정도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수업 중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에 관해 배우면서 남한산성에 관심이 갔다. 7년간의 왜란을 끝내고 내치에 힘써야 할 때 실리를 따르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자들이 결국 명분에 휩싸여 또다시 백짧다면 짧지만 길면 긴 10여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다시 허송세월을 했고 그 결과 민중들만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번 학기 수업을 통해 배우고 있는 성리학의 어두운 이면, 어찌 보면 그 이용자들의 우둔함이 있고, 이러한 의미를 느껴보기 위해 남한산성을 택하게 되었다.■ 남한산성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남한산성 남문으로출발하기 전에 지하철 산성역에서 버스로 바로 남한산성 안까지 갈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목적지가 산성이니까 걸어가면서 경치도 느껴보자는 생각으로 등산로 입구에서 하차해서 남한산성 남문을 목표로 걷기 시작했다. 토요일이라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등산로를 따라 벤치와 약수터, 지압길 등이 설치되어 있어서 유원지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유적지라고 하면 왠지 멀게만 느껴지고 지루할 것 같은 선입관을 없애고 가벼운 소풍처럼 유적지를 가까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바람직한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주변에 돌탑을 많이 쌓아서 공원화 해놓은 곳이 있는데 바로 통일 기원 돌탑들이었다. 국력이 약해 외국에 굴복해야 했던 남한산성에 그 후에 다시 국력이 약해 분단된 조국이 다시 통일되기를 기원하는 돌탑들이 찬바람에도 꿋꿋이 서있는 모습은 의미심장했다. 처음에는 쉽게 경사가 완만한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역시 산성답게 점점 가파른 길이 이어졌다. 역시 산성이 수축된 지역이라 만들어진 등산로가 아니었으면 길이 험했을 것이고 남한산성을 포위 공격했던 청나라 군대도 이런 지세를 이용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려조 몽고 침입 때 지방 관아에 머물렀던 충주성도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몽고군을 맞아 70여일이나 항전해서 물리쳤다고 하는데 조선 왕의 행궁이 있는 남한산성이 어찌 한 달여 밖에 견디지 못하고 항복하게 되었을까 싶었다. 평소 운동이라고는 하지 않던< 지 화 문 >나에게는 꽤 힘겨웠지만, 45분 여 만에 남문에 도착했다. 남한산성의 남문은 성의 서남쪽에 위치하는데 이미 존재하던 것을 인조 2년성 남문에서부터 수어장대로남문을 통해 성내로 들어서자 놀랍게도 매점과 주차장이 바로 눈에 띄었다. 그리고 바로 매점 옆에 초라하게 비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대체 어떤 비석일까 궁금해서 살펴보니, 새겨진 글들은 읽기 힘들 정도로 마모되어 있었는데, 남한산성의 수비를 담당하던 무장과 관리들의 불망비(不忘碑)였다. 물론 비석에 새겨진 이들이 역사적으로 유명하거나 중요한 인물들은 아니었을 것이고 또, 정말 비석으로 기릴 만한 인물들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주차장과 매점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옆에 설명문 하나 없는 불망비들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그들이 정말 애국충신들이었다면, 예나 지금이나 그들의 공로에 대해 무관심한 우리들 자신을 돌이켜보아야 할 것 같다.불망비들을 뒤로 하고 성벽을 따라 계속 오르자 수어장대에 이르렀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지은 4개의 수어장대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요한 건물이며, 수어청의 장수들이 군사를 지휘하던 곳이다. 바깥 정면에 ‘守禦將臺’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고, 수어장대 오른쪽에 원래 내부에 걸려 있었던 ‘무망루(無忘樓)’라고 쓴 현판이 전시되고 있었다. 무망이란 잊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군대를 지휘하는 장수들이 항상 보고 마음에 새김직한 현판이었다. 그리고 무망루 현판 바로 옆에는 놀랍게도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기념식수와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 바쁜 와중에도 이곳까지 올라와 기념식수와 기념비를 세워놓는 정치인들이 한심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그리고 맞은편 모퉁이에는 ‘매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는데, 그 유래에는 남한산성의 축성 책임을 맡았던 이회 장군의 억울한 죽음이< 매 바 위 >있다고 한다. 꼼꼼한 공사감독으로 인해 정해진 날짜를 넘기고 공사비용이 모자라게 되자 조정에서는 부정을 의심하고 결국 그 책임을 물어 참수형에 처했는데, 그는 ‘결백하지 않으면 죽은 뒤에도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수어장대 앞에서 그의 목을 베자, 목에서 매 한마리가 튀어나와 근처 바가 떼어갔음을 말해주는 사각형의 자취만 남아 있다. 이런 것까지 수탈해 갈 정도이니 일제 식민지 기간 동안에 수탈된 문화재가 얼마나 될지 짐작이 갔다.■ 서문을 거쳐 연주봉옹성으로다시 수어장대에서 성벽을 따라 가면 서문이 나오는데 서문은 남문과 비교해서 그 규모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났다. 성벽높이라든지, 성루의 크기, 그리고 성문통로 등 모든 면에 있어서 남문이 남한산성의 중심문이라 할 만 했다. 이런 서문을 지나 조금 오르다 보면 산성의 특이한 구조들이 나타나는데 바로 ‘옹성’과 ‘암문’이다. 그 외에도 엄폐와 함께 성 내부에서 외부로 총포 사격이 가능하도록 성벽위에 만든 담장 형식의 구조물인 ‘여장’나 성벽을 오르는 적병을 측면에서 공격하기 위해 돌출되도록 만든 성벽 형태인 ‘치’ 등은 성벽 그 자체이기 때문에 형태나 목적이 쉽게 이해되지만, 옹성과 암문의 경우 특이한 구조여서 실제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암문이 닫혀 있어서 결국 연주봉옹성 포대까지 가보기 위해서 서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성벽 밖 등산로를 따라 가야했는데, 암문을 통해 옹성으로 갈 수 있도록 해두면 체험을 통해 더 기억에 남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암문이란 원래 성문이 아니라 성이 공격받을 때에 적군 몰래 성 외부와 연락을 취하기 위해 숨겨져 있는 작고 낮은 문이라서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그런 것이라 이해도 되었다. 어쨌든 이런 암문은 바로 성 외부와 연결된 곳도 있지만, 연주봉옹성처럼 옹성과 연결되는 곳도 있는데, 옹성이란 원래의 성곽 외부의 요충지 예를 들면 성을 공격하러 오는 적들을 요격할 수 있는 곳에 낮은 성벽을 쌓고 방어진지를 구축해 놓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처음 수축된 산성은 활과 검을 주무기로 하는 전근대적인 전쟁< 연주봉옹성으로 이어지는 암문 >< 연주봉 옹성 >개념을 바탕에 두고 축성된 것이어서 화포를 쏠 수 있는 포루는 연기와 불꽃이 일어난다는 이유로 아예 처음부터 설치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인조 14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조선은 화포라는 새로운 공성무이 일어날 때 까지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당시 조선이 얼마나 허상에 빠져 세월을 낭비하였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했다. 이를 계기로 축성방법은 적의 화포공격에 대응하는 형태로 바뀌어서 성벽의 요해처에 옹성을 구축하고, 곳곳에 포혈을 설치하였다고는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일뿐이었다. 현재 연주봉옹성 포루도 복원되어 있다.■ 서문에서 국청사와 숭열전으로연주봉옹성을 나와서 다시 서문으로 들어가서 국청사로 향했다. 남한산성에는 국청사 외에도 여러 사찰이 있는데, 이는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순수한 사찰의 성격에 더해서 산성 승번제를 통해 산성을 수비하기 위한 승려들이 훈련과 불도 연마를 했던 곳이었다. 남한산성을 수축할 때 수어사 이서는 동남성의 축조는 이회에게 맡기고, 서북성은 벽암대사를 도총섭으로 임명하고 8도의 승군을 동원하여 진행하였다. 그래서 당시 수축된 산성에는 여장 1,700첩, 대문 4개, 암문 8개, 관청창고 등과 함께 사찰 7개를 갖추었다고 한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 있어서 어느 시대보다 숭유억불의 사상이 강했던 조선 시대에 승군으로 하여금 국방의 의무를 하도록 했다는 점은 대단히 모순적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려말선초의 불교가 세속에서 부를 축적함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 반발하여 숭유억불의 정책이 강조되었고, 병자호란 당시에는 이미 7년간의 왜란을 거치면서 형성된 승병을 산성 방어에 투입해서 왜란 후 잔여병력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 중앙집권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투영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반도 역사에서 국란을 겪거나 외침을 당할 때에 항상 불교가 호국종교로 역할 한 점은, 조선조 내내 권력 투쟁으로 사회 발전의 기회를 놓쳐버리게 되는 주요 원인인 유학, 성리학에 의미하는 바가< 국 청 사 >크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국청사 비롯한 사찰들도 조선 말기 산성 승번제가 폐지되고 일제에 의해 무장해제의 일환으로 불타 사라졌다가 다시 복원되었다. 현재 국청사도 원래 국청사지에서는 성 내부로 옮겨져 있다.국청사를 들른 뒤 남한산성의 중심인는
    인문/어학| 2007.02.17| 7페이지| 1,500원| 조회(1,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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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오페라 라보엠과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정경에 나타난 보헤미안의 삶과 사랑
    오페라 ?라보엠?과소설 ?보헤미안의 생활정경?에 나타난보헤미안의 삶과 사랑1. 들어가며 - 보헤미안은 누굴까?오페라 ?라보엠?과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정경?은 철학가 콜린느, 화가 마르셀, 시인 로돌프, 음악가 쇼나르의 보헤미안 4총사의 좌충우돌하는 삶과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보헤미안이란 무엇일까? 이 오페라와 소설을 처음 접하는 나는 보헤미안이라는 것에 대해 단순히 패션스타일의 한 종류 또는 자유로움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보헤미안에 대해 백과사전에는 “어원은 프랑스어 보엠(Boheme)이며,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 유랑민족인 집시가 많이 살고 있었으므로, 15세기경 프랑스인은 집시를 보헤미안이라고 불렀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회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방랑자,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예술가 ·문학가 ·배우 ·지식인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실리주의와 교양 없는 속물근성의 대명사로 되고 있는 필리스틴(Philistine)에 대조되는 말이다.” 라고 설명되어 있다.즉, 보헤미안이란 비주류이면서도 주류사회에 영합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지식인, 예술인들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보헤미안들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자유”라고 생각된다. 사회, 경제적 관습 특히 물질적인 부에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들의 삶을 추구해가는 것이 보헤미안들이 바랐던 것이고, 소설과 오페라에서도 이런 모습들이 잘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2. 보헤미안의 삶- 자유로운 청춘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오페라 ?라보엠?과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정경?에 나타난 보헤미안의 삶은 기성세대 또는 주류들의 관습에서부터 자유롭다. 보헤미안들의 자유로운 삶이란 바로 그들이 하는 예술과 학문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고 그 이상의 부와 명예를 추구하기 위해 주류사회에 속한 사람들처럼 살아가지 않음을 의미한다. 오페라와 소설에 등장하는 보헤미안들은 각각 철학과 미술, 음악, 시문학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소양을 갖고 있는 지식인 또는 예술가들이다. 쎄나클에 껴주기를 바라며 그들의 술값을 계산하자 쇼나르가 “이 작자는 지금 우리 상황을 이용하고 있어! 이렇게 저 사람을 받아줄 순 없어. 우리 테이블을 계산해 주었다면 내기 당구를 쳐서라도 25프랑을 갚아주겠어! 절대로 이렇게 공짜로 받을 수는 없는 법이지!” 라고 외치는 장면을 보면 보헤미안들은 경제적 무능력에 대해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가난함에도 굴하지 않고 순수한 학문과 예술에 매진하고 있다는 점에 오히려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보헤미안들은 그들의 가난이 곧 예술의 삶이고 이 둘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어서 현실에 타협하는 것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정경?에서 보헤미안들의 모임인 ‘물 마시는 사람들’의 한 명이었던 쟈크라는 청년 조각가가 자기 애인의 뒷바라지를 위해 현실과 타협하려고 하자 그 모임의 리더였던 라자르라는 보헤미안이 “개의치 말고 자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하지만 자넨 더 이상 조각가가 아니야. 단지 석고 반죽사에 지나지 않네.” 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부분에서 잘 나타나는데, 이처럼 보헤미안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심지어 죽음이 눈앞에 다가올지라도 절대 살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것을 자신들의 신념으로 여기며 살았다.(소설 ?보헤미안의 생활정경?에서)”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난하지만 즐거운 그들이런 보헤미안들의 현실감각 없는 이상추구의 모습은 가난이라는 현실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을 수는 없다. 그들도 인간이기에 의식주 해결을 위해 돈이 필요하고, 아무리 그들의 삶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인간이기에 더 편안한 삶을 동경하게 된다. 그래서 보헤미안들도 가난에 고통 받고 때로는 현실에 타협하기도 한다.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정경?에 등장하는 조각가 쟈크처럼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장식미술가로 나서서 사치산업에서 명성을 얻기도 하고, 로돌프와 마르셀, 세나르가 각자의 애인을 위해 글과 그림, 음악을 팔기도 한다.그렇지만, 보헤미안들은보헤미안들이 하는 행동들, 예를 들면 빚 독촉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벌써 그렇게 됐습니까? 시간이 참으로 빨리 지나가는 군요! 정말 놀라워요! 아무래도 여름용 바지를 한 벌 구입해야겠군요. 4월 15일이라니! 허, 세상에나! 브누아(채권자)씨가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칠 뻔했군요. 이거,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며 은근슬쩍 지나가려는 로돌프의 모습 등을 통해 보헤미안들이 가난에 힘겨워하지만, 한편으로는 가난을 받아들이고 이를 즐겁게 헤쳐 나가려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주류 사회에 대한 유쾌한 조롱또 보헤미안들은 가난하지만 함께 모여서 조촐한 파티도 하고, 아름다운 아가씨들과 사랑도 하며, 일상생활에서도 유치한 말장난을 통해 즐겁고 유쾌하게 지내려고 한다. 거기에 덧붙여 단순히 농담이나 실없는 장난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자신들을 아니꼽게 바라보는 주류층들에 대해 조롱과 풍자를 통해 현실에 대해 반항을 하기도 한다. 오페라 ?라보엠?을 보면 1막에서 로돌프 일행이 살고 있는 아뜨리에의 주인이 집세를 받기 위해 찾아오는데, 그에게 술을 권하며, 남자다움을 칭찬하며 불륜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꼬드긴 다음에 마지막에는 “Quest'uomo ha moglie e sconce voglie ha nel cor! 이자가 부인을 두고 다른 여자를 범해!”, “Si abbruci dello zucchero. 방을 소독해야겠네!”, “E la morale offesa che vi scaccia 부도덕한 비행이 널 내쫓내!” 라고 조롱하며 집세도 주지 않고 쫓아내버린다. 또, 로돌프 일행이 식당에 가서 마르첼로(소설에서 마르셀)의 연인이었던 무젯타와 함께 온 알신도르에게 “Paga il signor! 그 영감!” 이라며 무시하다가 식사비 일체를 떠넘기고 “E dove s'e seduto ritrovi il mio saluto! 영감님 제 인사나 받으세요!” 라고 하며 모른 체 하는 장면에서도 보헤미안들의 짓궂으면서도 유쾌한 조롱이 이어진다.소설 하얀 바탕을 칠하고 구석에는 소나무도 심어 놓고 주인공이었던 이집트 사람에게 황실경비대의 정예군 복장을 입힌 다음 라고 이름 붙였다.” 이렇게 자신들을 깔보는 주류사회, 마르셀의 일화에서는 심사위원들을 귀찮게 하는 장난들을 통해 자신의 반감을 표출해내고 있다. 그 외에도 그들 보헤미안의 세나클에 가입하기 원하는 바르브뮈슈에게도 까다로운 입회조건들을 내걸다가 마지막 관문에서 바르브뮈슈의 신발이 마르셀의 발에 작다는 이유로 “이보시오, 선생. 선생과 저는 아무래도 친한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소이다. 그 이유는 외형의 차이는 윤리적 불화의 척도가 되어왔기 때문입니다. 철학과 의학의 관계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라고 어이없고 궤변 같은 우스꽝스런 이유를 대며 간단히 그의 가입을 거절해 버린다.이렇게 보헤미안들은 물질적인 편안함을 얻기 위해 현실에 타협하기 보다는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예술과 학문의 세계에서 살아가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가난과 경제적 무능력을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그런 자신들에게 비난과 멸시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유쾌한 조롱과 장난을 통해 주류사회의 틀에 묶이지 않고서 저항하는 삶을 보여준다. 한 편으로는 자신이 쓴 글로 난로를 때거나 알신도르에게 심한 장난을 치는 것이 오히려 보헤미안들의 경제적 무능력이나 예의 없음에 대한 주류적 입장에서의 풍자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그렇게 보기보다는 가난함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는 그들의 유쾌함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물론 때때로 물질적으로 고달픈 삶에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이를 유쾌하고 즐거운 작은 사건들로 이겨내려 노력하는 모습들이 평범하지 않은 색다른 삶의 모습을 제시해준다.3. 보헤미안의 사랑- 오페라 ?라보엠?의 미미와 로돌프, 그리고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정경?의 쟈크와 프랑신느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오페라에서 보여주는 미미와 로돌프의 캐릭터와 사랑의 모습은 소설에서의 미미와 로돌프의 사랑에다 쟈크와 프랑신느의 사랑과 관계를 섞어놓은 것 같다. 소설의 쟈크의 연인인 프랑신느막 장면은 사랑하지만 가난해서 어떻게 해줄 수 없어 사랑을 떠나보내는 비극을 잘 표현해낸다.하지만 소설에서는 오페라에서 미미의 정숙한 이미지보다는 그 당시의 현실적이면서도 순정적인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다. 로돌프가 열쇠를 찾아 감춘 걸 알면서도, 그에게 속아 넘어가 주는 것이나 그와 헤어진 후 경제력 있는 남자를 만난다는 점은 순정적이면서도 한 편 현실감각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소설에서는 로돌프의 엄청난 질투심과 미미의 허영심으로 인해 결별을 했다가 다시 만나서 미미의 죽음으로 이어져서 그들의 사랑의 순수함이 좀 퇴색되지만 오히려 첫사랑의 서투름을 잘 보여주는 면도 있다고 생각된다.그렇다고 이들의 사랑이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사랑에 빠져드는 장면에서 일부러 촛불을 꺼버린다든가, 소설에서처럼 쟈크가 성냥을 찾고서도 프랑신느에게 “어허, 이를 어쩌나! 난처한 일이 또 생겼군요. 제가 집에 돌아와 양초에 불을 켤 때 사용한 성냥이 마지막 남은 것이었네요” 라며 거짓말 하는 장면과, 시간이 좀 지나서 열쇠를 찾게 되는데도 그냥 둘러대고는 “쟈크가 눈치 채지 못하게 애타게 찾던 열쇠를 테이블 밑으로 밀어 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들은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속마음을 잘 표현해주어서 관객들이 자신들의 사랑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다.- 오페라 ?라보엠?의 마르첼로와 무제타의 유쾌한 사랑보헤미안의 사랑에서 또 다른 한 축을 이루는 이들이 마르첼로와 무제타이다. 이들의 사랑은 슬프고 아름다운 느낌을 주기 보다는 현실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연애를 보여주며, 그 과정에서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들이 미소를 자아낸다. 오페라 ?라보엠?의 보헤미안 일당과 식당에서 무제타가 마주치는 장면에서 마르첼로가 알신도르와 함께 있는 무제타에게 질투를 느껴 “Il suo nome e Musetta; cognome: Tentazione! Per sua vocazione fa la Rosa dei venti; gira e muta soventi e d'amanti e d'amore. 다.
    예체능| 2007.02.17| 6페이지| 1,500원| 조회(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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