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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요약) 마오쩌둥, 손자에게 길을 묻다 2권
    ■ 마오쩌둥, 孫子에게 길을 묻다 (2권)● 성동격서, 결정적인 승리의 조건을 먼저 쟁취하라: 전쟁의 승패는 누가 먼저 제승(制勝)의 조건을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 적을 제압하려면 반드시 네 가지 요소를 잘 다스려야 하는데 그것은 치기(治氣), 치심(治心), 치력(治力), 치변(治變)이다.- ‘자기한테 남아도는 것을 차지하려고 다투다가 자기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이들을 죽이는 것은 지혜롭다고 할 수 없다.’-우회를 통해 지름길을 찾아라 : “한때를 참으면 바람이 멎고 물결이 잔잔하고, 한 걸음 물러나면 마음이 텅 비어 바다처럼 넓어진다.”-군대는 기회를 만나지 못하면 움직이지 않는다 : ‘남자는 때를 만나지 못하면 쓰이지 못하고, 군대는 기회를 만나지 못하면 움직이지 않는다.’-적보다 늦게 움직여 유리한 전기를 잡아라 : 장제스는 “우리는 열 사람이 한 사람을 당해 내지 못했다. 우리 30만 대군이 그들 3만의 군대를 무찌르지 못했다.” 이 승리는, 마오쩌둥의 ‘적보다 늦게 움직여 적이 쇠퇴하기를 기다려서 형세를 타고 적을 제압하는 계략’이 얼마나 교묘했었나를 잘 설명해 준다.-닛산 자동차 회사가 서민용 중형차인 ‘써니’를 시장에 내놓고는 대대적인 판촉 활동을 펼쳤다. 당시 도요타는 이렇게 생각했다. 닛산의 써니에 대한 강력한 PR은 서민용 중형차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차 발매하게 될 도요타의 서민용 중형차에도 큰 도움을 주는 셈이다. 그래서 비록 닛산보다 한 발 늦긴 했지만 도요타는 아무런 모험을 하지 않고도 짧은 기간에 써니보다 성능이 우수한 서민용 중형차인 ‘코로나’를 생산해 낼 수 있었다.-후퇴와 전진의 시기를 판단하는 것도 전략이다 : 만약 스위스가 원래 계획대로 일본보다 일찍 전자시계를 내놓아 아날로그시계와 함께 시장을 공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스위스는 후퇴와 전진의 시기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 너무도 많은 것을 잃고 말았다.-우회와 직행을 적절히 활용하여 승리를 쟁취하라 : ‘앉아서 칼을 갈고 있다고 당 사이의 오랜 내전에 커다란 분기점을 이루는 일이 었다. 그리하여 홍군 주력부대가 진저우로 향한 것은 그 해 9월 초였다. 그 해 2월에 마오쩌둥이 ‘국민당 군대를 동북에 묶어두고 각개로 섬멸한다’는 전략 구상을 제출한 뒤에 반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장제스가 대륙에서의 패배를 선언하고 타이완으로 국민당 정부를 옮긴 것은 그로보터 1년 후, 그 모든 것은 동북지방을 상실한 여파이고 그곳의 허파인 진저우를 잃어버린 결과였다.-이해득실을 잘 따져서 개인의 능동성을 발휘하라 : 파커사는 저가 볼펜 시장으로 제대로 진입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고가 만년필 시장의 점유율이 17%나 떨어져 판매량이 크로스사의 50%에 불과하게 되었다. 파커사의 정책 결정 실수는 저가 볼펜 시장 공략이라는 작은 이익 때문에 고가 만년필을 취급하는 큰 이익에 타격을 주었다는 점에 있었다.-유비무환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지만, 방비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더욱 안 된다’는 말이 있다.-루스벨트 대통령의 기만 전술 : 시카고의 한 신문이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미 해군의 행동 계획을 입수하여 독점 뉴스로 보도해버린 것이다. 만일 이 신문 보도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면 일본은 곧장 미드웨이섬에 대한 작전 계획을 취소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더 심각한 것은, 일본인들이 경각심을 일으켜 자기들의 암호체계의 신뢰성에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만일 일본이 암호체계를 새롭게 만들어 버리면, 미국 정보국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마침내 루스벨트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채택한 대책이란 모든 것을 그냥 내버려두기로 한 것이었다. 만약 이때 루스벨트 대통령이 노발대발하며 지휘관을 문책하고 신문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 등 소란을 피웠다면 제2차 세계대전 자체의 결말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은 변화 상황에 직면하여 전혀 놀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위기를 타개하는 지혜를 발휘함으로써 해상 작전의 주도권을 미 해군이로는 전투태세를 강화하고 있다면, 이는 아군에 대하여 공격을 하려는 뜻이다. 그러나 적에게서 파견된 사신이 강경한 말투로 주장을 전하면서 금방 공격할 태세를 보인다면, 이는 적이 철수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적이 병기를 땅에 짚고 서 있다면 식량이 떨어져서 굶주리고 피로하다는 징후이며, 물을 길어 가지고 저마다 먼저 마시려고 다투고있다면 목마름이 심하다는 징후이다. 그리고 분명히 유리한 작전조건임을 알면서도 공격하지 않는다면 피로가 매우 심하다는 징후이다.-드골의 전략, 프랑스군에서 냉대를 받다 : 드골은 다으모가 같이 말했다. ‘영국와 미국은 바다로 가로막혀 있기 때문에 공격하기가 힘들다. 독일은 권력 중심과 공업 중심이 분산돼 있어서 일거에 꺾기가 힘들다. 스페인은 빌리니우스산이 장벽을 이루고 있고, 이탈리아는 알프스산이 보호해 준다. 이에 반해서 프랑스의 심장부인 파리는 어떤 침략군에 대해서도 대문을 열어두고 있다. 왜냐하면 파리 주위의 평원은 아주 넓고 평탄해서 방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지형적인 상황에서 프랑스를 보호할 믿을 만한 전략은, 견고하게 구축된 요새가 아니라 프랑스 군대를 기동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고, 그 규모는 6개 장갑사단 10만 병력이면 충분하다. 이들은 미래의 작전에서 항공의 지원 아래 기동 작전을 펼침으로써 적진 깊이 침입하여 승리를 빼앗아 오게 될 것이다. 심지어 젊은 드골을 높이 평가했던 당시 육군 대장 페탱 장군조차도 드골이 제기한 이론의 정확성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구닥다리 전투 기법만을 손질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는 데는 단돈 15프랑밖에 들지 않았다. 프랑스 사람들은 너무 자기 안에 갇힌 나머지 결국 자기의 발명으로 적을 도운셈이 되었다.” 드골이 쓴 책의 가격이 15프랑에 불과하다.-낙엽 한 잎 떨어지는 것만 봐도 가을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일엽지추라는 말이있다. 나무줄기에서 떨어지는 하나의 낙엽을 보고도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안다는 뜻으로, 이편개전이란 는 것이었다. 병사들이 너도나도 최고 지휘관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보고하자, 순식간에 윤자기의 정체가 드러나고 말았다. 장순은 그 자리에서 윤자기를 향해 화살을 쏘게 했고, 장순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추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마오쩌둥의 기본전략은 인재 활용이었다 : ‘강함과 부드러움을 보완적으로 활용한다’는 용인술은 마오쩌둥의 사상 가운데 가장 핵심이다. 지도자의 가장 큰 능력은 부하들에게 능력을 발휘하여 공적을 쌓을 기회를 주는 것인데 이를 지도자가 나서서 박탈해 버리고는 오히려 부하의 책임을 묻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용인술은 두 가지를 포함한다. 첫째, 충분하게 인재의 적극성과 창조성을 발휘시키는 것이다. 둘째, 인재들을 잘 거느려서 서로 얽매이지 않고 협조하게 만들고 서로 다투지 않고 어울리게 만드는 것이다. “연꽃은 좋긴 하지만 녹색 잎이 받쳐주어야 한다. 울타리 가시 받 침대는 세 개의 말뚝이 있어야 하고, 의협심 많은 영웅이 있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이 도와야 한다.” “마오쩌둥은 장병들에게 직접 보내는 전문에서 ‘전투에 임할 때는 자네가 잘 생각해서 독단으로 처리하라’고 했다. 심지어 부하에게 ‘자네의 임기응변으로 처리하되 내게 지시를 요청하지 말라’고 한 적도 많았다.” 그렇다면 정제스는 어떠했을까? “그의 전보문에는 ‘반드시 시행하라, 만일 착오가 방생한다면 군율에 따라 엄히 처벌할 것이다’ 같은 문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는 너무나 고집이 세고 자기 자신을 너무 믿는 사람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유부단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었다.”-혁명전쟁 당시, 국민당 군대는 머무는 마을마다 숙소와 군량을 요구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살아남기 위해 모든 물자를 공급해야만 했다. 반면에 공산군은 민폐를 끼치는 병사를 엄벌에 처했고, 마을의 한쪽 공터에서 노숙을 하며 스스로 끼니는 해결했다. 장제스 역시 중국이 낳은 위대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그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유아독존적 성격이 아주 강했기 때문에 타협이 불가능했고, 자기 이상을 실천해 나가는 데개선시켜라 : 손빈병법을 지은 손빈은 ‘군대를 막 결집시켰을 때는 격기해야 하고, 계속해서 행군할 때는 이기해야하며, 군대가 적의 국경에 이르렀을 때는 여기해야하고, 전투에 돌입하는 상황에서는 단기해야 하며, 오늘 싸우려고 하는 상황에서는 연기해야 한다.’ 여기서 연기란 ‘사상 교육을 진행할 때 빈틈이나 빈 시간을 남겨두어서는 안 되고 지속적으로 사상 교육을 잘해야 한다’는 뜻이다.-‘무(武)’로 정돈하여 법제와 기율을 강화하라 : 제갈량은 굵은 눈물을 쏟으면서도 이렇게 대답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손무가 언제나 승리를 거둔 이유는 법 시행을 공정하게 했기 때문이다. 사해가 분열되어 전쟁이 막 시작된 지금, 만일 그가 다시 법을 어긴다면 어떻게 적을 토벌할 수 있겠는가?”-신상필벌의 원칙을 반드시 지켜라 : “상이란 군사들을 기쁘게 하는 것으로 사병들이 목숨을 걸 수 있게 만들고, 벌은 혼란을 바로잡는 것으로 백성이 윗사람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제갈량은 병사를 격려하는 다섯 가지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첫째, 공을 세운 사병들에게 관직과 재물을 준다. 둘째, 예의와 성의를 이용해서 병사들을 격려한다. 셋째, 병사들로 하여금 앞다퉈 군법을 지키게 하고 똑같은 군율을 적용한다. 넷째, 장수가 솔선하여 모범을 보이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도록 요구한다. 다섯째, 작은 선이나 작은 공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칭찬하고 표창한다.● 견인불발, 자연 조건에 순응하라: 적의 방어 능력과 아군의 공격 능력을 알아도 지형의 불리함을 모른다면 승리의 가능성은 절반밖에 안 된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자연 조건과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쟁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자신의 능력을 믿고 과감하게 판단하라 : ‘나아가서는 이름을 구해서는 안 되고, 물러나서는 죄를 피해서는 안 된다. 백성들 보호에 최선을 다하고, 군주의 이익에 맞아야 한다.’-역발상의 태도에서 지혜가 나온다 : 뛰어난 지도자는 상식적인 규범이나 기율을 고집하지 않는다. 틀에 박힌 생각, 고정관념다.
    독후감/창작| 2007.05.08| 6페이지| 1,500원| 조회(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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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요약) 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
    ■ 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 열반의 꿈꾸는 나신 - 김아타-열반에 드는 것은 에고의 소멸을 말한다. 과거의 개인적인 삶은 전체 속에 용해되고(옴마니반메훔, 즉 연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대해로 떨어져 녹아든다는 말이 이것을 의미한다), 그때 평화와 법열이 보상처럼 따라온다고 한다.● 성철 큰스님 - 김호석-‘전신사조’란 말이 그것이다. 이 용어는 중국의 고개지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다. 전신이란 대상 속에 숨겨져 있는 신, 즉 정신을 일컫는 말이고, 사조란 작가가 관조한 대상의 형상을 묘사한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전신사조란 형상을 통하여 정신을 표현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시퀸으로 뒤덮인 불상 - 노상균-부처의 모습이 재현될 수 있는 네 가지 자세는 부처가 경쟁교단의 스승들을 제압하기 위해 행한 슈라바스티의 ‘위대한 기적’에서 보인 네 가지 자세에서 연유한다. 바로 서고, 걷고, 앉고, 누워 있는 자세만이 부처를 재현하는 적절한 자세로 여겨지고 있다.● 내 친구이자 스승인 청담 - 박생광-청담은 유심론에 입각하여 현실 속에서 선적인 수행을 통한 구원의 문제에 천착한 이다. 그는 “오직 부처와 같은 완전한 지혜는 부처와 같이 정화된 생활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 불교의 모든 내용은 정화되어 가는 기초적인 생활체험을 체계화한 것에 불과하며 불교는 수도, 수행으로서 선학이라 해도 무방하다”라고 말한다.● 선정에 든 TV부처 - 백남준-불교는 불[Buddha란 알다, 깨닫다의 뜻을 가지는 어근 budh의 과거수동분사로서 안 사람, 깨달은 사람을 말한다.]의 교란 뜻이다. 즉 깨달음의 가르침이 바로 불교다. 여기서 깨달음이란 어디까지나 자각, 즉 스스로 깨달음의 체계이기 때문에 불교의 주된 특징은 교주나 교리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불교는 도그마의 체계가 아니라 깨달음의 체계며, 있음의 체계가 아니라 없음의 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운주사 미륵불 - 송필용-미륵보살은 석가모니 부처가 입멸한 뒤 56억 7천만년이 되는 때, 즉 인간의 수명이 8만세가 될 때에 도솔천에서 이 사바세계로 내려와 화림원의 용화수 아래에서 미륵불로 성불하여 3회의 설법으로 272억 명을 교화한다고 한다.● 민불 - 오순환-슬픔이 있으면 기쁨이 있고,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다. 그러므로 기쁨과 슬픔을 가다듬어서 선도 없고 악도 없어야 비로소 집착을 떠나게 된다. 지난날의 그림자만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면 꺾어진 갈대와 같아서 초췌해지리라. 그러나 지난날의 일을 반성하고 현재를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몸도 마음도 건전해지리라. 지나간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아직 오지않은 미래를 기다리지도 말라. 오직 현재의 한 생각만을 굳게 지켜라. 그리하여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진실하고 굳세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최선의 길이다.[법구경]● 지옥도 - 오윤-옛 사람들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하늘적 요소와 땅적 요소의 결합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적 요소가 혼이고, 땅적 요소가 다름 아닌 백이다. 혼은 넋이고, 백은 얼이라 한다. 넋은 위로 올라가는 신적인 것이고, 얼은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라 귀적인 것이다. 그래서 죽은 이를 제사지내는 것은 혼에 대한 예이며 이는 혼의 지속적인 시간을 관리하는 의식이라고 한다.● 현대판 만다라 - 이중희-만다라는 밀교 의례와 작법을 도식화한 그림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불보살의 집합도와 같이 생각하지만 실은 옛 인도의 바라문 풍습을 받아들여 불교도들이 가람을 조성하여 불보살을 모시고 예배하던 단이나 단장에서 비롯되었다. 논리전개와 대중의 필요에 따라 부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인도의 전래신앙이나 힌두교 등의 신을 불러들여 체계화한 것이 밀교라는 이름으로 집대성되었고 그 안에서 만다라가 그려진 것이다. 만다라는 스스로의 수행이 아니라 부처님의 도움을 받아서, 즉 가피력에 의해 정각을 얻는다는 뜻인데, 넓은 뜻으로는 삼라만상의 모든 덕이 모여 장엄된 것이라는 뜻이다.● 선미를 풍기는 판화 - 이철수-“살아있을 때는 삶, 이 자체가 되어 살아가야 한다. 죽을 때는 죽음 그 자체가 되어 죽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제 그 어떤 두려움이나 불안한 마음도 없게 된다.”[벽암록]● 봉황산 부석사 - 이호신-땅은 편안한 거주지의 장소이자 자기실현의 장이 되고, 모험의 장소이자 동시에 심미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한국인들의 이상적인 공간인식이 구현된 곳이 다름아닌 절이 자리한 곳이다.-사찰에는 부처의 뜻만이 아니라 오랜 세월 바라왔던 우리 민중의 염원과 민속, 무속, 도교사상과 풍수사상 등도 모두 담겨 있다. 그래서 사찰, 사찰이 놓인 공간은 그 자체로 전통문화와 미술의 학습장이기도 하다.-풍수란 ‘자연과 인간의 만남의 미학’이다. 인간의 마음가치와 자연가치를 잘 융합하여 이루어내는 자연과의 합일인 것이다. 명산의 사찰들은 불교와 풍수가 만났다고 보는 것이 옳다. 여기서 영지관념이란 산천이 수려한 땅에 신령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다.● 적멸의 순간 - 임영균-세월을 머금고 시간과 함께 한 흔적을 상처처럼 두르고 있는 것이 사물의 피부다. 역사의 잔해인 그 사물, 골동들에 깃든 퇴적된 시간의 지층을 가만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내가 언제 이 자리에 와서 저것들을 또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얼굴[불어로 visage]’이란 단어는 ‘보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videre’의 과거분사 ‘visus’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러니까 원래 ‘얼굴’은 보는 능력, 보이는 것, 그리고 보이는 것의 겉모습을 의미했다.● 상생의 풍경 - 정동석-사진이 기록하는 것은 대상이라기보다는 결국 시간인 셈이다.-우주 만물의 근원을 파고들어 가면 일체의 모든 것이 태극 공의 상태가 된다고 했다. 태극 공의 세계는 평등한 세계이며 때문에 공간만이 존재하는 상은 평등하며 차별이 없는 세상이다. 삼라만상이 모둗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등한 공간계에 시간의 흐름이 들어가면 비로소 차별이 생긴다. 달이 시간의 흐름을 타고 초생달, 보름달, 그믐달 등으로 변하는 모습은 시간의 흐름의 차이를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공간적으로 달이라는 것은 같지만 시간의 흐름을 탄 초생달, 그믐달, 보름달의 가치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다. 그래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옛 선가어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당신이 선을 공부하기 전에는 산은 산이고 강은 강이다. 선을 공부하고 있는 동안에는 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니고 강은 더 이상 강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의 눈이 열리면 산은 다시 산이고 강은 다시 강이다.”●영성을 지닌 풍경 - 주명덕-인간의 풍경 체험은 외계의 시각상을 눈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풍경화란 토지가 그림 속에서 감상된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토지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 사이의 일정한 거리 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이미지를 말한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풍경화란 장르의 애초의 의미는 ‘중세시대에 특정한 영주가 지배하는 구역 또는 특정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단다. 반면 동양에서 풍경이란 단어의 원래 뜻은 바람과 세계의 시각상으로 된 언어를 의미한다. 배의 돛대와 바람에 실려 이리저리 비행하는 벌레가 바람이고 그것은 비가시적 존재이지만 사물의 몸을 빌려 나타난다. 그러니까 바람은 타자의 몸을 빌려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다. 동양에서 풍경/산수화란 바로 그런 미세한 기운, 호흡, 생명, 모든 만물의 감촉, 섬세한 주름까지도 잡아내고 이를 형상화하려는 지난한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독후감/창작| 2007.05.08| 3페이지| 1,000원| 조회(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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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요약) 1시간 만에 읽는 국화와 칼
    ? 1시간 만에 읽는 국화와 칼-서양권에서는 전 병력의 4분의 1이나 3분의 1이 전사하게 되면 나머지는 항복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되어있다. 일반적으로 항복한 수와 전사한 수의 비율은 4대 1이다. 그런데 일본군의 경우는 그 수치가 판이하게 달랐다. 예를 들면 북부 미얀마 전투에서 항복한 자와 전사한 자의 비율은 142명 대 17,166명, 즉 1:120이었다.-학교의 한 교장은 여학생들에게도 유럽어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그것은 아내가 남편의 서재에서 책의 먼지를 턴 후 위아래가 바뀌지 않게 꽂아둘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과거에는 사무라이와 영주의 강한 유대가 잦은 전쟁을 통해 형성되었지만 평화로운 도쿠가와 시대로 넘어가면서 그 유대는 경제적인 것이 되었다. 사무라이는 가문에 따라 정해진 액수를 받는 봉급 생활자였다. 일본 학자들은 사무라이들의 평균 봉급이 농민의 소득과 거의 같다고 보는데, 이는 거의 최저 생계비에 불과했다. 따라서 사무라이는 절약과 검소라는 미덕을 중시했다.-도쿠가와 정권 250년 동안 농민 폭동은 최소한 1,000건은 일어났다. 그것은 40%의 중과세 때문이 아니라, 40%도 모자라 여기에 추가적인 세금을 더 걷는 것에 대한 항거였다.-영주들은 쇼군 허락 없이는 결혼이 불가능했는데 이는 위험한 정치 동맹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쇼군은 첩자를 통해 항상 영주들의 재산을 감시했다. 만일 그들의 재정 상황이 좋아지면 쇼군은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토목 공사를 명령했다. 영주가 매년 반년간을 수도에서 살아야 하며, 자신의 영지로 돌아갈 때도 아내를 에도,에 인질로 남겨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메이지 유신 : 일본 근대화 초기의 슬로건은 ‘왕정 복고’와 ‘오랑캐 추방’이었다. 쇼군을 물리치려 시도했던 도자마 다이묘들은 이러한 복고 운동을 도쿠가와 막부를 쓰러뜨리고 자신들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메이지 정부는 개혁을 늦추지 않았으며 한국을 침략하자는 계획도 묵살해 버렸다. 이러한 방침은 메이지 유신을 도왔던 대다수 사람들의 뜻과 상반되는 것이어싿. 결국 1877년 반대파의 리더인 사이고는 대규모 반군을 조직하여 정부에 대항했다. 그들은 존왕파로서 메이지 유신을 도왔지만 봉건 제도는 존속시키길 원했다. 정부는 이에 대항해 사무라이가 아닌 지원군을 모집하여 사이고의 사무라이들을 격파했다. 국민들 모두가 반대하는 개혁을 추진한 정부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일본의 특별한 봉건제도가 키워왔던 세력, 즉 낮은 계급의 사무라이와 상인들의 연합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을 어떤 이데올로기 혁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것을 그저 일로 생각했다. 그들의 목표는 일본을 세계에서 주목받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었다.-천황은 집권의 명분 : 천황은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다를 뿐, 옥새나 국기, 국가와 같은 상징물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다만 그것은 신성한 상징물이다. 외국인들이 태극기를 태우면 우리가 분노하듯이,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천황이 모욕당할 경우 당연히 분노하게 된다.-일본인과 권태 : 미국에서는 자살이 절망에 굴복하는 행위로 여겨지지만, 일본에서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수행되는 명예로운 행위로 여겨진다. 오늘날 일본인은 ‘세상이 기울어졌다’고 느끼거나, ‘방정식의 양변이 같지 않을 때’, 또는 오명을 씻는 ‘아침 목욕’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을 해치는 경우가 많아졌다.-바람을 피우는 것 : 나는 부인을 배신한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가장 사랑 받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라고 애써 변명한다. 결혼을 했건 안했건 간에 사귀는 사람은 한번에 한명 뿐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서양인과, 아내와 ‘즐기는 상대’를 따로 두는 일본인(그리고 한국인) 사이에는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다.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미덕의 딜레마 : 두 가지의 의무는 모두 선이다. 두 가지의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은 마치 채무자가 빚을 갚기 위해 고민하는 것과도 같다. 그는 어느 한쪽의 빚을 갚는다고 해서 다른 한쪽의 빚을 탕감 받지는 못한다. 서양인들은 주인공이 착한 쪽에 서서 악한 쪽을 응징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세상에 대한 기리와 이름에 대한 기리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유일한 해결책으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등의 심각한 내용을 좋아한다. 서양인들은 인습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행복을 성취하는 사람이 강인하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인들은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고 의무를 완수하는 사람이 강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즉 규칙에 순응하는 인간이 규칙에 반기를 드는 인간보다 강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의무보다 자신의 개인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을 나약하다고 생각한다.
    독후감/창작| 2007.05.08| 2페이지| 1,000원| 조회(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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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요약) 간신론
    ? 간신론 - 간신을 구별하고 제압하는 방법? 독자에게 드리는 말씀- ‘원우당적비’, 1104년 처음 세웠다. 309명의 이름만 줄줄이 새겨져 있는 희한한 비석이다. 이 명단에는 사마광ㆍ소식(소동파)ㆍ황정견 같은 당대의 간신배의 명단이다. 황제가 직접 명령을 내려 황궁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새겨 세우도록 한 비석이다. 이듬해 명령이 취소되어 다 없애고 지금 단 두 개만 남은 아주 희귀한 비석이기도 하다. 이 비석은 훗날 사가들에 의해 간신 중의 간신으로 평가된 당시의 재상 채경이 주동이 되어 세운 것이기도 하다. 간신 채경은 또 다른 간신 여혜경 등과 더불어 신법 개혁파의 거두 왕안석을 도와 개혁을 주도했다. 사마광이나 소동파 등은 왕안석의 신법 개혁을 반대했던 보수세력의 대표들이었다. 간신에게 농락당한 왕안석은 간신인가 아닌가? 시대의 흐름을 명철하게 읽지 못하고 개혁을 집요하게 반대했던 사마광은 충신인가 간신인가?- ‘한 나라의 흥망은 그 백성들 책임이다!’? 서론1. 역사적 현상으로서의 간(奸)- 장적과 평소 교분이 없던 한유가 이렇게 장적을 힘껏 밀어주었으니 장적은 한유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세 가지 결점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첫째, 당신은 도박을 좋아한다. 둘째, 당신은 황당무계한 소설을 숭상한다. 셋째, 당신은 말로써 사람을 굴복시키기를 좋아한다. 게다가 차분히 학문에 힘써 자기 설을 세우려 하지 않고, 후세에 이름만 남기려 한다고 비판했다.- 왕안석이 궁지에 몰려 재상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을 때, 그를 ‘공자에 버금가는 성인’ 이라며 아부하던 여혜경 무리는 왕안석을 공격했다.2. 간신을 분석한다- 천하의 다스림은 군자가 여럿이 모여도 모자라지만, 망치는 것은 소인 하나면 족하다.- 진나라 때의 유의는 “벼슬살이에는 세 가지 어려움이 있으니 인물을 알기 어렵고, 애증을 막기 어려우며, 정과 위선을 분별하기 어렵다.”고 진서 유의전에 털어놓았다.3. ‘간신’ 분석론의 구성- ‘간’과 수단ㆍ책략을 구별해야 하며, ‘간’과 결점ㆍ실수를 구별해야 하고, 들어 그의 의지를 시험한다.』(4) 《맹자》〈양혜왕〉(5) 《한비자》(6) 《인물지》(7) 《설원》2. 고대 변간이론의 한계(1) 계급적 한계(2) 불완전한 체계(3) 비과학성- 백거이는 “옥은 사흘만 불에 넣어보면 충분하지만, 인재는 7년은 족히 기다려야 가릴 수 있다.”고 했다.“지금부터 시간은 내 것이고, 지난날은 관가의 것이었다.”라고 노래했다.? 제3장 위대한 좌표 - 실천적 좌표1. 계급적 관점2. 민족적 관점3. 민중적 관점4. 역사적 관점5. 사회 진보적 관점6. 생산 발전의 관점? 제4장 간의 근원 탐색 - 과학적 분석1. 봉건적 사유제 - ‘간’이 생겨나는 토양- “인생은 짧다. 병권을 내놓고 많은 재산을 자손에게 물려준 후 노래와 춤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또 우리 군신간의 의심을 없애고 서로 편하게 지내는 것이 한결 좋지 않겠는가?” 이튿날 측근 부하들은 모두 사직했다. 이른바 ‘술잔을 돌리며 병권을 풀어놓았다’는 ‘배주석병권’의 역사적 사건은 이렇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재상 이선장은 개국공신 중에서도 첫손 꼽히는 인물이었으며 주원장의 딸과 혼인까지 했다. 죽을죄를 지어도 죽음은 면해준다는 ‘고명철권’까지 내려주었다. 77세의 노인은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한다. 그의 집안 식구 70여 명도 모조리 처형당하는 참으로 기가 막힌 꼴을 당했다.- 유기는 뛰어난 지혜를 가진 인물로서 주원장은 이런 그를 ‘나의 자방’이라고 칭찬할 정도였다. 유기는 홍무 초에 나이를 핑계로 낙향했다. 결국 주원장은 그의 정적을 이용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무장은 거의 전부 몰살당하다시피 했다. 주원장의 숙청은 먼저 문신을 죽이고 그 다음에 무장을 살육하는 수순을 거쳤다.- 송나라 고종이 금나라 군대에 승승장구하던 악비의 군대를 철수시킨다. 그 까닭은 고종이 타고난 매국노였기 때문이 아니라 악비가 정말로 금의 군대를 꺾고 포로로 잡혀간 휘종과 흠종을 구해올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황제자리가 위험했던 것이다.2. 낡고 썩은 도덕의식 있는 것을 납득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내 말의 조리가 내 듯을 분명하게 전할 수 있느냐에 있는 것도 아니며, 언변으로 내 뜻을 다 보일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는 것도 아니다. 설득의 어려움은 바로 설복하려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나의 말을 그의 마음에 맞출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 한비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남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힘써야 할 점은 상대가 자랑스러워하는 바를 더욱 칭찬해주고, 상대가 부끄러워하는 부분을 덮어주는 것이다. 상대가 마음속에 급히 하고자 하는 사적인 일이 있을 때, 그 일이 모두에게도 당연하다는 것을 보여주어 꼭 하도록 강조해야 한다. 한편 그가 마음속으로 비천하다고 느끼지만 하지않을 수 없는 일을 가지고 있을 때, 유세객은 그에게 그 일을 좋은 일이라 하며 용기를 북돋우고 만일 하지 않는다면 유감이라고 말해야 한다. 또 그가 마음속에 고상한 일을 계획하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 이룰 수 없는 일인 경우에, 유세객은 그에 대한 과실을 거론하고 그 일의 해악을 설명하여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해야 한다.』- 《순자》〈신도〉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명령에 복종하되 군주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순이라 하고, 명령에 복종하되 군주에게 이익이 안 되는 것을 아첨이라 하며, 군주의 이익을 위해 명령을 거역하는 것을 충절이라 하고, 명령을 거역하되 군주에게 이익이 안 되는 것을 찬탈이라 한다.(5) 은혜와 의리를 저버리고 양심을 팔아버리며, 강을 건너고 나면 다리를 부수는 등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을 서슴없이 저지른다.(6) 신의와 약속을 저버리고, 변덕이 죽 끓듯 하며, 맹세해 놓고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풍몽룡의 《유세명언》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범거경은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약속날짜를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다. 중양절이 되어 주위 사람들이 부산을 떠는 모습을 보고는 약속이 생각났던 것이다. 사람이 하루 만에 천리를 갈 수는 없지만 귀신은 마음대로 갈 수 있다고 했지! 거경은 스스로 이니 그 자를 멀리하십시오.”(2) 비위 맞추기(3) 충성 표시하기(4) 간사한 아부하기- ‘오귀’라고 부르는 간악한 권력자들 가운데 하나인 정위는 구준의 수하에 있을 때는 구준을 지극히 공경하며 모셨다. 구준이 국물을 자기 수염에 흘렸다. 곁에 있던 정위가 후닥닥 일어나 구준의 수염을 닦아주었다. 구준은 싱긋이 웃으며 “정사에 참여하는 국가 대신이 어떻게 장관의 수염을 닦을 수 있소?”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수염을 쓸고 말 엉덩이를 두드린다’는, 즉 ‘알랑거린다’는 뜻의 ‘유수박마’라는 성어가 널리 유행하기 시작했다.- 당 태종 때의 악사 고최외란 자는 귀신이나 백치 분장을 잘했다고 한다. “제가 방금 전 물속에서 굴원을 만났사온데 그가 제게 말하길 ‘나야 초나라 회왕이 하도 무도하여 멱라수에 몸을 던졌지만 너는 성군을 만났는데 왜 여기까지 왔느냐?’라고 하더이다.”- 남조의 송문제가 낚시를 하는데 한나절이 지나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러자 왕경이란 자가 이렇게 말했다. “고기를 낚는 사람이 너무 깨끗해서 미끼를 탐내는 물고기란 놈이 감히 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2. 간신의 수단(1) 거짓 은혜 베풀기(2) 권세 과시하기(3) 잔인함 과시하기3. 간신의 술수(1) 이간질하기(2) 음모 꾸미기(3) 중상모략하기(4) 약점 들추기(5) 부러 일 만들기? 제7장 가식과 허상의 짙은 안개를 걷어내다 - 역사의 투시력1. 간신과 위장(1) 환심 사기(2) 인심 얻기(3) 나쁜 마음 포장하기2. 간신의 위장술(1) 충성스럽고 성실한 척하기(2) 점잖고 너그러운 척하기(3) 멍청하고 어리석은 척하기(4) 때로는 똑똑하고 많이 아는 척하기? 제8장 간신과 아첨배를 절대 얕보지 말라 - 역사의 겸허함1. 반복되는 비극- 간신 소인이 짧은 시간에 신임을 얻고 오랫동안 중용되는 까닭이나, 그들이 저지른 죄악으로 인한 피해가 그처럼 오래고 엄청난 까닭은 그들의 비열한 간심이나 교활한 간술 외에 객관적 현실에 영합하는 일정한 소질이 있기 때문이며, 또 일반인으로서는 따르랑했더라면 3세가 아니라 1만 세까지 임금 노릇을 한다 해도 누가 그를 멸망시킬 수 있었겠는가?(1) 가볍게 간신을 믿어버린다.(2)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간신을 따른다.(3) 겁이 많아 간신을 두려워한다.(4) 어리석음 때문에 간신을 함부로 날뛰게 한다.(5) 자비심 때문에 간신을 키운다.- 악한 자에게 너그러움을 베풀어 큰 근심을 만든 교훈으로는 조순이 도안고에게 자비를 베푼 경우보다 더 좋은 본보기는 없을 것이다.(6) 자신을 이기지 못해 간신을 받아들인다.- 《자치통감》에 이런 말이 있지 않는가? 군주가 어떤 말을 해놓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면 경ㆍ대부들로서는 감히 그 말을 벗어나지 못한다. 경ㆍ대부가 어떤 말을 해놓고 스스로를 옳다고 여기면 서민들은 감히 그 말을 반박하지 못한다. 군주와 신하들이 스스로를 잘났다고 하면 나머지 아랫사람들은 일제히 한 목소리로 잘났다고 맞장구쳐야 한다. 그래야만 순종한다고 하여 복이 돌아오지, 거슬렸다간 화를 입기 십상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편안하게 잘 사는 길이다.2. 간신 퇴치법(1) 간신을 막겠다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2) 간신을 물리칠 수 있는 덕을 키운다.(3) 간신을 살피는 지혜를 갖춘다.(4) 간신과 싸우는 용기를 키운다.(5) 간신을 제압하는 기술을 익힌다.? 제10장 간인을 가려 자신의 잘못을 살피다 - 역사의 반성1. 자기반성(1) 스스로를 아는 현명함이 필요하다.(2)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한다.(3) 스스로를 꾸짖을 수 있어야 한다.- 춘추시대 진 문공의 대법관이었던 이리라는 인물. 《사기》〈순리열전〉을 따라가보자. 한 번은 이리가 증거도 불충분한 말만 믿고 어떤 사람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 일이 있었다. 뒤늦게 이를 깨달은 이리는 즉시 자신을 구속하게 한 다음 스스로 사형 판결을 내렸다. 이 소식을 들은 진 문공은 깜짝 놀라며 “관직에는 귀천이 있고 죄에는 가볍고 무거운 것이 있는 법, 아랫사람의 잘못이지 그대의 잘못이 아니잖은가!”라며 이리를 용서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는 침통한 목소리.
    독후감/창작| 2007.05.08| 11페이지| 2,000원| 조회(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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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요약) 구도자의 나라
    ? 구도자의 나라? 1부 베다 - ‘나’에 이르는 무한한 실험1. 신자가 없는 종교의 대륙- 힌두교는 어떤 특정한 창시자에 의하여 만들어진 종교가 아니다. 장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수 대중의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하여 형성되어 온, 지금도 형성 도상에 있는 미완의 종교이다. 힌두교인은 힌두교인으로 태어난다. 애초부터 종교라는 이름으로 의식되는 테두리가 없으니 벗어날 테두리도 없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자신의 종교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정통ㆍ이단 시비가 없다는 것이다. 분명히 서로 다르지만 싸우지 않는다. 이들에게 ‘다르다’는 것은 다만 다른 것일 뿐, 결코 ‘틀린 것’이 아니다.- “힌두교인은 보다 훌륭한 힌두교인이 되고, 무슬림은 보다 훌륭한 무슬림이 되며, 기독교인은 보다 훌륭한 기독교인이 되라.”는 것이 우리가 잘 아는 마하트마 간디의 가르침이었다.2. 낯선 이름을 가진 인류 정신사의 고전- 만일 어떤 브라만이 성상을 숭배하지 않는다 해도 힌두교인으로서 아무런 문제도 안 되지만, 베다에 규정된 일상적인 기도와 의무로 규정된 예식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힌두교인이 아니다.- 인도의 사상이나 종교에서 정통성의 근거는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는가의 여부이다. 어떤 종파나 학파든 베다의 권위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정통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베다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곧 아웃사이더임을 자처하는 것이다. 붓다나 마하비라(자이나교의 개조)의 사상이 인도 철학에서 외도로 규정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우리가 흔히 베다라고 부르는 본집 외에도 제사에 관한 상세한 절차와 의미를 담고 있는 브라흐마나, 아란야카, 우파니샤드도 베다에 포함된다.3. 인도에 정복당한 성스러운 정복자들- 이란과 인도의 아리아인들이 수세기 동안 한 곳에서 하나의 종교를 공유했다는 것은 분명한다. 이는 이란 아리아인들의 문헌인 『아베스타』와 인도 아리아인들의 문헌인 『리그 베다』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여러 신들족들이 각자의 고유한 문화를 발달시키면서 살아가고 있던 땅에 새로이 이주해 온 민족으로서, 스스로의 생존과 자기 고유의 뿌리를 유지하는 것이 최고의 관심사로 떠올랐으며, 이와 같은 시대적 요청에 대한 응답이 바로 베다의 형성으로 나타난 것이다.- 전통적으로 인도 사람들은 경험적인 시간에 대하여 무관심했기 때문에 역사적인 어떤 사건이나 문헌에 연대를 기록한다는 것은 이들의 사고방식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오늘날에도 어떤 문헌이나 사상의 연대를 추정함에 있어서 천 년 정도의 차이는 그냥 눈감아 준다. 베다의 형성 시기에 대한 추정이 기원전 4000년에서 기원전 1200년까지 들쭉날쭉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초기 불교 문헌들(기원전 500년경)을 통해서 보면 당시 인도에는 브라흐마나와 우파니샤드를 포함하는 베다 전체가 이미 상당할 정도로 널리 유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베다 찬가가 체계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했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는 시기는 기원전 15세기경이다.- 베다의 형성은 다른 한편으로 카스트 제도의 확립으로 이어진다. 카스트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아리아인들이 스스로의 순수성을 보존해 가는 노력이 구체화된 결과로 나타난 제도라는 설명이 가장 설득력 있는 견해로 받아들여진다. 베다의 편찬이 정신적인 면에서 토착 선주민들과 아리아족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라면, 카스트는 사회 구조적인 면에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카스트는 사회 구조적인 면에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점은 카스트제도의 배타적인 측면이 특히 식사와 결혼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남과의 차별을 통해 마련된 자기 정체성은 결국 배타적인 성격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냈으며, 이 점은 인도 역사를 통하여 고질적인 병폐가 되었다. 인도가 애초부터 영성의 나라일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 측면이 없지 않다.※ 브라만 : 브라만교에서 힌두교로 이어지는 인도 정통 종교의 사제계급이었던 브라만은 ‘재생족’이라미한 것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여러 신들은 천, 공, 지 삼계의 신들로 나누기도 하였다. 이러한 작업이 진행되며 차츰 초기 베다의 다신교적인 성격이 단일신교라는 베다 특유의 종교 형태로 발전해간다. 어떤 한 신만이 최고의 지위를 점하는 주신으로 선택된다.- 다른 모든 신을 부정하는 유일신이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최고위급 신들 사이에도 상하의 구별이 없었던 것은 당시 아리아인 부족들이 하나의 단위로 통일된 채 위계질서를 갖지 않고 제각기 독립되어 살고 있던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주와 신성에 대한 통찰이 깊어 감에 따라서, 다수의 신들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자연스러운 경향이 나타났다.7. 일신교와 다신교, 그리고 일원론의 절묘한 통일- 인도 종교에서 최고의 신은 언제나 신들 중의 신이라는 성격이 드러날 뿐 오로지 하나밖에 없는 신이라는 생각은 자리잡지 못한다. 말하자면 다양성을 배제한 통일이 아니라, 다양성 속의 통일이다. 베다 시대 후기에 확립되는 ‘다양성에 대한 포용’의 자세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현재 인도인의 일상적인 삶의 특징으로 되어 있다.- 브라흐만이 무형ㆍ순수ㆍ무감정의 존재로 깊은 사색과 영감에 의해 파악될 수 있는 우주의 궁극적 원리를 말한다면, 이슈와라는 따스한 가슴으로 지닌 감성적인 사람들에 의하여 인자하고 자비로운 최고의 신으로 숭배된다.- 인간에게는 신을 유한한 인간과 대조해서 무한한 인격으로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극도로 논리적인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인격신 없는 종교란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성격을 지닌다.- 철학자는 자신의 보잘것없는 언어로 영원한 궁극자를 묘사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무한하고 장엄한 우주의 모습이나 온갖 존재의 원천이며 궁극적인 것에 대해, 불충분하지만 대신 이해하기 쉬운 상징을 고안해 내는 것이 인간에게는 불가피하다. 자신의 짧은 지식에 매여있는 인간에게는 인해하기 쉽고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징, 즉 우상이 필요한 것이다. 형체도 없고 무한하고 영원한 궁극자를 쉽게 이해하고 가까이 하는 것은가정을 이루는 단계다. 세 번째 단계는 경제적인 기반과 가업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숲으로 들어가 명상하는 단계다. 아내와 함께 혹은 무리를 이루어서 숲으로 들어가 명상에 전념한다. 마지막 단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운수의 길을 떠난다. 이때는 탁발이 주요 생계수단이다.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세상을 떠도는 산야신이 된다. 인생의 마지막 단계는 포기에 바쳐진다. 행위도 가족도 사회도 초월하며, 해탈에 대한 집착도 벗어 버린다. 이 네 단계를 통하여 이루어야 할 인생의 목적은 부의 축적, 욕망의 실현, 의무의 실천, 그리고 해탈이다.- 누구나 산야신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세속의 삶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힌두교는 철저하게 길의 종교다. 힌두교는 목적보다는 길 자체에 충실할 때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종교인 것이다.- 근자에 들어 인도 사상에 대한 관심이 가난한 인도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물질의 풍요를 체험한 서구 사람들에 있다는 것은 이점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11. 포기할 줄 아는 가슴의 지혜- 베다가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포기의 철학’이다. 쌓아 올리는 것은 결국 버리기 위하여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포기의 철학’은 인간의 무게 중심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인간의 가장 내밀한 본질은 지가 아니라 정이다.? 구도자의 나라? 2부 불경 - 대자유를 향한 마지막 집착1. 인도적 전통의 반항아- 윤회와 업 같은 인도의 전통적인 사상들을 받아들이면서도 베다의 권위를 거부하고 브라만교의 고착화된 폐습을 부정하는 일군의 무리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출가사문(원래는 고대 인도에서 베다 성전의 권위를 정면으로 부정한 혁신적인 출가 수행자를 총칭하는 말이었으나 후대에는 단순히 출가한 승려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들이었다.- 모든 것을 신이 창조했다면 세상의 온갖 고뇌와 모순도 신이 창조했다는 말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는 인간의 행위나 생각 최상의 공양이다. 게으르지 마라. 나는 게으르지 않아 스스로 바른 깨달음을 얻었고 한량없이 많은 선행도 역시 게으르지 않아 얻을 수 있었다. 일체 만물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란 없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다.”3. 영원히 계속되는 불경 편찬의 역사- 석가족 출신으로 뒤늦게 출가한 한 비구승 때문이었다. “부처가 계실 때는 법과 계율이 엄중하여 항상 잔소리가 많았지만 이제 그 늙은이가 가셨으니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되어 기쁘지 않으냐. 이제부터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카시야파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을 당혹스럽게 하였다. 그들은 인생과 교단의 올바른 방향을 위해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확히 지키는 것이 최상이라 생각하여 경전 편찬을 서두르게 된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법은 아난다(석가모니의 사촌동생으로 시자가 되어 25년간 석가모니를 보좌하면서 가장 은 설법을 들었다. 따라서 그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에서도 다문제일이라 불린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부처님의 설법 가운데 8만 2천 가지와 다른 사람이 그에게 전해 준 2천 가지 이야기를 기억해 냈다고 한다)가 암송하고 계율은 우팔리(10대 제자 중 계율제일로 불린다. 이 외에도 10대 제자들 중에는 지혜제일, 신통제일, 설법제일 등이 있어 독특한 불교의 흐름을 만들어 간다)가 암송하면 5백 대중은 이에 대한 진위 여부를 논의 하였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정식 인정되면 이들이 함께 암송하며 기억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다. 즉 자료의 출처도 제자들의 기억이었고 정식으로 인정된 경전도 머릿속에 기록하는 작업이었다. 당시 인도에선 절대적이고 무한한 진리의 세계를 범속한 문자로 고정시키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강했다. 7개월 동안에 걸친 작업 끝에 초기 불교의 경전과 계율이 정비된다. 이때 편찬된 경전이 『아가마』한자 문화권에서 『아함경』이라 불리는 책들이다.- 진보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던 인물들의 대표는 아난다였고 보수적인 그룹의 대표는 마하카시야파였다.
    독후감/창작| 2007.05.08| 14페이지| 2,500원| 조회(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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