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와 기독교 9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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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 구약의 이해
9-1.
신화시대 1. 신화시대: 창세기 1~11장의 구조
장: 하나님의 천지 창조 3-5장: 인간의 타락 - 아담과 하와 (3장), 가인과 아벨(4장) 6-9장: 가인의 후예에 대한 심판이 대홍수 (6-8장) 10-11장: 바벨탑 사건 - 두 번째 인간의 죄악
1-2
신화로서의 창세기 (1-11장)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의 순서를 보면 날을 구분하는 낮과 밤을 만드는 해와 달은 네 번째 날에 창조됨 → 그렇다면 해와 달이 생기기 이전의 날이란 대체 무엇인가?
2.
창세기에는 두 개의 ‘창조 이야기’가 있음 - 1장의 창조 이야기 / 2-3장의 창조 이야기에서 창조 의 순서가 다름 창세기 5장에는 ‘아담의 족보’가 나옴 → 아담의 족보를 역으로 계산하면 세계창조는 6600년 전으로 추정 but 이는 지질학적 증거와 맞지 않음 세가 넘는 인간의 수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담 (930) 므두셀라 (969) 노아 (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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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 기독교 9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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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전강독1 강의정리(2-1)전공학번성명장 자크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 사회계약론, 에밀 등의 여러 저서를 남긴 사상가이다. 이 중 사회 계약론에 대해 강의에서 다루었다. 사회계약론에서 루소가 다루고자 한 것은 국가의 성립과 운영에 대한 정당한 원칙이다. 루소는 제네바 시민이었는데, 제네바는 당시 공화국이었다. 군주제를 비판하며 시민들이 집단적으로 스스로를 통치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서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라는 문장은 사회계약론 1권 1장에 적혀 있는 문장이다. 이러한 발상은 루소 이전에는 쉽게 할 수 없었다. 노예를 인간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루소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정당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루소는 모든 사회 중에서 가장 오래된 동시에 자연적인 것은 가족 사회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족 사회에서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며 이성을 사용하는 나이에 다다른다면 인간은 독립적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인간의 제1 법칙은 자기 스스로를 보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족 사회의 유지를 위해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일종의 “합의”가 필요하다.그러나 루소는 가족을 정치사회의 모델이라고 보는 관점에 대해 비판한다. 가족과의 차이점은 먼저, 아버지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양육하지만, 지도자들은 국민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가부장제의 가족을 국가와 동일시 하는 관점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계급을 본성적으로 구분한다. 본성적으로 노예가 될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을 노예로 만든 것은 힘, 즉 권력이라고 루소는 말한다. 루소는 이 ‘힘’ 즉, 폭력으로부터 지배할 권리는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도덕성이 강한 사람으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결론적으로 힘은 정당한 정치 질서와 권력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는 정당한 정치권력에 대해서만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4장에서 루소는 노예제에 대해 다룬다. 휴고 그로티우스라는 인물에 대해평화가 깨지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하며, 휴고 그로티우스의 의견에 대해 반박한다.루소는 인간이 자유를 포기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격, 권리, 의무, 도덕성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데, 이런 교환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등가물과 교환이 없는 합의이기 때문이다. 루소는 전쟁을 국가 간의 관계라고 보며, 국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여긴다. 전쟁이 발생하면 우발적으로 서로가 적이 되며, 국가의 방어자로서 적이 된다. 국가와 인간이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이어지는 5장에서 루소는 응집과 회합의 개념을 구분한다. 힘으로 사람들을 굴복시킨 집단은 회합이 아닌 응집이다. 마찬가지로 인민이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기 이전에 이미 ‘인민’이기 때문에 회합이 아니다. 정당한 정치 질서를 만드는 것은 오직 ‘자유인’들 간의 합의라고 루소는 말한다. 개인들이 모여서 회합을 만드는 목적은 공동의 힘을 이용해서 각 회합 원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다. 루소는 이러한 회합이 형성될 때 각 개인은 자신의 모든 권리와 자유를 공동체 전체로 전부 양도한다고 말한다. 회합에 참여하는 모두는 일반의지의 아래에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양도한다.구성원들은 회합에 대해 이중적인 관계와 의무를 진다. 각각의 개인들은 주권자의 구성원인 동시에 주권자에게는 국가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개인은 주권자의 의무를 진다. 주권자는 크게 5가지의 특징을 가진다. 첫 번째로 국가는 스스로 법을 제정할 뿐, 따르지 않는다. 두 번째로, 주권자는 사회계약을 통해서 산출되기 때문에 최초의 사회계약을 위반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즉, 주권을 양도한다면 사회계약을 해지하는 것과 같다. 세 번째로, 단체를 구성하는 개인을 상처입히는 것은 개인이 속한 단체를 공격하는 것과 같다. 반대로 단체를 공격하면 그 단체를 구성하는 개인들도 고통을 느낀다. 네 번째로 주권자는 구성하는 개인들에 반하는 이익을 가질 수 없다. 마지막으로 각 개인은 주권자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 개별적인 이익을 공동의 이익보다 일반의지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은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본성상 편중되지만, 일반의지는 평등을 지향한다. 이로 인해서 개별의지와 일반의지의 불일치가 발생한다.루소가 말하는 주권은 입법이다. 우리는 주권이 세 개로 분할되며 그중 한 가지를 입법이라고 보는 개념에 익숙하지만, 루소가 말하는 주권은 다르다. 행정권과 사법권은 입법권 아래에 종속되는 개념이라고 루소는 말한다. 행정권과 사법권은 일반의지를 집행하는 것일 뿐이다. 일반의지의 형성에 있어서 어떤 시민도 배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일반의지 또한 분할 될 수 없다. 일반의지는 원칙적으로 보았을 때 공동의 이익과 선을 추구하기 때문에 부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원하는 것과 아는 것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인민이 일반의지에 대해, 즉 공동의 이익에 대해 올바르게 알지 못한다면 일반의지는 틀릴 수 있다.일반의지가 도출되기 위해서 루소는 시민들 간의 의사 교환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시민들의 부분적인 회합은 해당 집단의 견해를 일반의지로 간주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말한다. 루소의 이러한 주장은 현재 우리의 민주주의와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일반의지에 근거한 주권은 인민들에게 어느 정도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먼저 공적 인격과 사적 인격을 구분한다. 공적 인격은 시민의 권리와 신민의 의무와 관련되며 사적 인격은 인간의 자연적인 권리와 관련이 있다. 국가는 공적 인격에 대해서만 관여할 수 있다. 각 개인은 사회계약에서 자신의 힘과 재산, 자유에서 공동체에 중요하게 사용되는 부분만을 양도하기 때문이다. 또 일반의지를 따르는 것은 자기 자신을 따르는 것과 동일하다고 말한다. 사회계약은 모든 개인에게 같은 조건과 의무, 그리고 권리를 누리기 때문에 평등하다.사회계약은 계약자를 보호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목숨을 걸 권리도 있다. 만약 타인을 희생시킴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고자 한다면, 반대로 필요한 경우 타인을 법은 한 개인의 개별적인 행위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루소는 말한다. 법은 특권의 설치를 규정할 수는 있지만, 그 특권의 수혜자를 설정할 수는 없다. 루소는 일반의지에서 정해진 법은 부당할 수가 없다. 악법이라고 볼 수도 있는 독재자로부터 생긴 법은 일반의지에서 생긴 법이 아니기 때문에 부당할 수 있다. 루소는 공화국의 개념을 행정 형태와 관계없이 법에 의해서 지배되는 모든 국가라고 본다. 즉, 모든 정당한 정부는 공화정이라고 말한다.이어지는 7장에서는 입법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권자는 인민 전체이지만, 인민 모두가 입법자는 아니다. 주권자와 입법자는 다르다. 모든 인민이 입법자가 될 만큼의 이성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입법자는 힘, 논증의 사용이 모두 불가능하다. 이는 이성이 아니라 시민들의 마음에 다가가야 한다. 이로 인해 현자들은 다른 차원의 권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일시적인 결합을 지속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지혜라고 루소는 말한다. 법을 실행하고 받아들이는 인민도 중요하다. 인민마다 성숙기가 다르기 때문에 규율을 받아들일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서양고전강독1 강의정리(2-3)전공학번성명앞선 내용에서와 같이 루소가 생각하는 주권은 일반의지와 같다. 주권자는 입법권을 가지기 때문에 법을 통해서 행동한다고 루소는 말한다. 주권자는 곧 모든 인민이기 때문에 인민이 모여야만 주권자가 성립될 수 있다. 인민이 한 번 모이면 국가가 성립된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민의 집회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후로도 입법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또 특별한 조건 없이 인민의 집회가 열려야 한다. 만약 국가가 여러 개의 도시로 구성되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권은 분할될 수 없기 때문에 이 경우 인민들 간의 회합이 열리는 데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루소는 모든 인민이 모여서 집회를 열 수 있는 작은 규모의 국가가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작은 규모의 국가는 성립되기 어려운 개념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루소는 고정적인 수도 없이 각 도시를 번갈아 가면이 높다. 조국애가 약화되고, 사적인 이익이 강조되는 등의 문제로 인해 시민들은 대의제를 추구하게 된다. 대의원에게 최종 결정 권한이 없다는 것을 루소는 강조한다. 이 당시 이미 부분적으로 대의 민주주의 체제이던 영국에 대해 루소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친다. 대의 민주주의 아래의 인민은 대표자를 선출하는 때에만 자유롭다고 말한다. 대표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인민들에게 자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인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18세기에는 정부의 설립은 인민과 왕 사이의 종속계약이라는 생각이 보편적이었다. 이 계약에 따라 왕은 명령할 의무를 가지고, 인민은 복종할 의무만을 가진다는 생각이다. 루소는 이러한 생각을 거부한다. 일반의지와 주권은 양도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왕에게 복종하는 계약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 일반의지의 주권적 행위는 입법이기 때문에, 계약의 특성상 인격체와의 계약은 불가능하다. 위와 같은 사유를 들어 루소는 해당 관점을 비판한다. 종속계약이 아닌 ‘회합의 계약’만이 국가에 존재하며, 다른 계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루소는 입법과 행정부의 행위를 분명히 다른 것이라고 구분한다. 이는 각각 법의 제정과 집행으로 구성된다. 민주정의 장점은 일반의지의 행위를 통해 실질적으로 설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루소가 생각하는 주권에 대해 걸맞은 정치체제는 민주정이다. 정부의 설립은 계약이 아닌 법에 기반을 둔다. 인민들은 자신들이 원한다면 관료를 임명할 수도, 해임할 수도 있다. 행정부의 관료들은 인민의 법을 따를 의무를 가진다. 과거와 같이 귀족정치의 체제는 인민의 약속 위에 설립된 국가가 아니다. 그저 임시적인 형태이며, 인민이 폐지하고자 한다면 폐지되어야 한다고 루소는 말한다. 왕정도, 세습 정부도 동일하다.일반의지에 대한 인민들의 태도는 중요하다. 인민들이 공동이익을 우선순위로 둔다면 일반의지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가 된다. 만약 반대로 사회의 결속이 약화된다면 사적인 이익이 우선시 되게 된다. 개인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게 된│페이지
서양고전강독1 강의정리(1-1)전공학번성명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저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만든 아카데메이아에서 공부했으며, 알렉산더 대왕의 어린 시절 스승이기도 하다. 이후 뮤케이온이라는 학교를 설립하고, 알렉산더 대왕 사후 아테네를 떠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양한 학문의 기초가 되는 저서들을 상당수 남겼다. 윤리학뿐만 아니라 형이상학, 논리학, 문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저작이 남아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완성한 것이 아니며, 하나의 단일한 작품으로 출판하기 위해서 적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이 편집하여 출간하였다.먼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는 행위의 선택과 목적에 대해 다룬다. 사람들의 행위와 선택은 ‘좋음’을 목표로 하지만 이 ‘좋음’에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좋음을 크게 활동과 성과물의 두 가지로 분류한다. 또 목적은 ‘펜-글쓰기-책’으로 이어지는 과정처럼 위계질서를 가진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는 앞서 말한 것들이 아닌 최고선에 대해 이야기 하는 고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것의 수단으로서의 좋음이 아닌 최상의 좋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바로 그 최고선을 ‘행복’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행복의 특징에 대해 말한다. 행복은 완전하며 자족적이다. 이는 다른 것의 수단이 아니며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 자족을 누린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칭찬을 할 때에, 그 칭찬의 대상이 되는 행위는 다른 것의 수단이다. 그러나 행복은 칭찬의 대상보다도 더 상위의 것이기 때문에 칭찬이 아니라 명예로우며 지극히 복된 것이다.지금까지 행복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추상적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1권 8장에는 행복에 대해 조금 더 상세하게 나와있다. 좋음은 외적인 것, 영혼과 관계된 것, 육체와 관계된 것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진다. 헹복은 이 중에서 영혼과 관계된 좋음이다. 즉, 행복은 사람이 영혼의 측면에서 탁월하게 살고 행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행복과 즐거움의 관계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아리스토다면 삶 자체가 즐거움을 가지고 있다. 행복과 즐거움을 분리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에는 외적인 조건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외모, 친구, 풍족한 재산 등의 조건들은 노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결국 행복은 우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외적인 조건은 주변적인 것일 뿐 스스로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서 배우고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배우고 노력하면서 탁월함을 얻게 된다면, 탁월함은 안정적이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단순한 운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재산과 외모 같은 조건들은 외적이기 때문에 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삶에 때로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탁월성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비참해지진 않는다.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영혼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식물적 부분, 욕구적 부분, 이성적 부분으로 나눠진다. 먼저 식물적인 부분은 영양분을 공급하는 기능을 한다. 욕구적인 부분은 인간이 가진 욕구에 관련된 부분이다. 영혼의 이성적인 부분은 인간에게만 고유하게 존재하는 이성과 관련된 부분이다. 따라서 탁월성은 영혼의 이성적인 부분과 관련이 있다. 영혼의 이성적인 부분은 독립된 부분이 아니라 욕구적인 영혼과도 관련이 있다. 우리가 가지는 육체적인 욕구를 이성의 판단에 의해 절제하고 인내할 수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욕구적인 영혼도 어느정도 이성을 가진다. 이는 각각 지적 탁월성과 성격적 탁월성으로 연결된다. 행복과 관련된 부분은 바로 성격적 탁월성이다.마지막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의 정확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학문의 다양한 영역은 다른 정도의 정확성을 추구해야 한다. 물리학의 법칙은 정확도가 높다. 그러나 행복의 정의를 물리학 만큼의 정확성을 가질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의 관한 논의는 대체로 타당한 것일뿐, 물리학처럼 모든 우주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법칙이 아니다.서양고전강독1 강의정한 성격을 태어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단지 적절한 습관과 훈련을 통해서 성격적인 탁월함을 얻을 수 있다. 지적인 탁월함은 그저 듣거나 배움으로써 상대적으로 쉽게 획득할 수 있지만, 성격적인 탁월함은 습관이 결정한다. 기술과 성격적 탁월함은 공통적으로 알기 때문에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과 다르게 성격적인 탁월함은 그 행위 자체 때문에 선택해야 하고,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행위해야 한다는 차이점을 가진다.감정, 이로부터 경험하는 능력, 감정을 대하는 태도, 즉 품성 상태 중에서 품성의 상태가 성격적 탁월함에 해당한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상태일 때 성격적 탁월성을 이루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품성 상태의 중간을 판단할 때는 각각이 처한 관계를 바탕으로 판단해야 한다. 단순하게 산술적으로 중간의 상태, 평균의 상태가 중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처한 상황에서 따져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모든 감정이 중용의 상태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심술이나 파렴치와 같은 감정들은 그 감정 자체가 악하다고 볼 수 있다.그렇다면 우리는 중용의 품성 상태를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먼저 강조한 사실은 이러한 품성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용이라는 것은 더욱 칭찬받아 마땅하며 고귀한 일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중용의 상태를 이루기 위해, 즉 성격적 탁월함을 이루기 위해서 앞서 말했던 것처럼 습관을 가져야 한다. 중용의 범위는 정확한 수치로 표현할 수 없고, 명확한 기준을 설정할 수도 없다. 따라서 개인의 중용은 개인이 자신의 상황에서 지각에 의존하여 판단해야 한다.탁월함에 관련된 올바른 이성이라는 것은 ‘실천하는 지혜’이다. 상황에 따른 적절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 인간은 먼저 상황을 올바르게 파악해야 하고,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행위를 생각해야 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이성의 판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리스 보편타당하다. 즉, 다르게 있을 수 없는 대상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행위 하는 원리는 한 가지로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실천적 지혜 또한 정해진 한 가지의 방법만 도출해내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가정의 경제와 법을 만들 때, 정치에서 실천적인 지혜가 적용된다. 이러한 실천적인 지혜는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알 수 있는 특징을 가진다. 지식과 달리 책이나 교육을 통해서 터득할 수 없다.니코마코스 윤리학 6권 13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성격적 탁월성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자연적 탁월성과 엄밀한 의미에서의 탁월성이다. 종종 자연에서나, 어린아이들을 볼 때면 탁월해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러나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탁월하다고는 볼 수 없다. 실천적 지혜가 있어야만 엄밀한 의미에서 탁월성을 가질 수 있다.서양고전강독1 강의정리(1-3)전공학번성명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고대 그리스 시기에는 전쟁이 자주 발생했었고,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죽음, 전쟁을 바탕으로 용기에 관해 설명한다. 용기는 두려움 혹은 대담함과 관련이 있지만, 모든 두려움과 직결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전쟁에서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용기는 다음과 같다.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대상과 방식을 마땅히 그래야 할 목적을 위해, 마땅히 그래야 할 때 견디고 두려워하는 것’이며 ‘이성의 판단을 따라 느끼고 행위’하는 것이다. 이어서 용기는 고귀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용기와 용기라고 여겨지나 용기가 아닌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와 끝까지 맞서 싸운 것은 시민적 용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공포 때문에, 고통을 피하고자 행위를 하는 것은 진정한 용기라고 할 수 없다. 분노도 진정한 용기가 아니다. 또,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술에 취한 것과 같기 때문에 용기가 아니다.두 번째로 니코마코스 윤리학 3권 10장에서 끝부분까지는 절제에 릴 수 있다. 인간의 오감 중 시각, 청각, 후각은 절제와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오직 촉각과 미각이 절제의 대상이며, 좀 더 실제적으로 들어가면 두 가지 중에서도 촉각만이 절제의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촉각을 통해서만 향락을 느낄 수 있다. 촉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들은 동물적이며, 따라서 무절제한 사람은 동물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식욕과 성욕 같은 자연적으로 가지게 되는 욕망은 폭식가처럼 과도하게 많이 가지는 경우만 무절제하다고 본다. 그러나 개인이 각각 가지는 고유한 욕망은 자연적인 욕망과 다르다. 개인의 고유한 욕망에서부터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무절제한 사람은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을 지나치게 욕망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욕망으로 인해서 즐거움을 얻지 못할 때 고통을 느낀다. 절제라는 덕목을 소유한 사람은 진정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적절하게’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결국 절제는 중용의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다음으로 5권에서는 정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먼저 정의란 무엇일까? 정의는 사람들이 정의로운 행위를 실천하게 하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게 만들며 정의로운 것을 바라게 만드는 품성 상태이다. 부정의는 이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또한 법을 준수하는 사람은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법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정의되며 공동체에 따라서 달라진다. 따라서 법을 준수하는 탁월성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탁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탁월성의 종류 중 타인에게까지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정의가 유일하다. 공정성은 정의 안에 포함되는 정의의 일부분이다. 모든 불공정한 것을 모두 정의롭지 않다고 볼 순 없다.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첫 번째로 분배적 정의는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가진 것을 분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분배적 정의는 비례적 정의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우리의 시선으로 보더라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두 번째로 이지
아시아 공동체 속에서의 양안관계, 그리고 한국아시아 공동체의 이해 중간과제아시아 공동체 속에서의 양안관계, 그리고 한국아시아 공동체의 이해 수업 중, ’중국과 대만, 양안 관계의 이해’라는 강의는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던 중국과 대만의 관계에 대해 흥미를 불러왔다. ‘중국과 대만은 사이가 안 좋지.’라고 어디선가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두 국가의 관계를 양안관계라고 부른다는 것도, 이것이 동아시아 지역의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알지 못했다는 것보다 인식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더 나아가 아시아 내의 여러 국가와 한국이 어떠한 관계인가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넓은 범위에서 아시아를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하고, 구성하는 국가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가지진 못했다. 수업을 들으면서 분명하게 느낀 점은, 나 또한 아시아 공동체를 구성하는 일원 중 한 명이기에 최소한 아시아가 공동체로 연합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첫 번째 강의 때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아시아 공동체라는 것이 정말 실현이 가능할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실현이 될지는 미지수이다. 6주간 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주제의 강의를 들으며 내린 결론은 명료했다. 그럼에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시아의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고민해 보는 것이었다. 지금도 세계는 상호 연결되고 있고 이 흐름을 아시아도, 한국도 벗어날 수 없다.다양한 주제의 강의 중에서도 양안 관계에 대한 이문기 교수님의 강의가 가장 인상깊었다. 강의를 통해 중국과 대만의 관계가 최근 몇 년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보다 이전부터 지속되어 온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UN에서 중화민국이 축출된 이후로 국제사회에서 독립된 주권 국가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인상깊었다. 중국과 수교하는 것은 대만과의 단교를 의미한다는 것은 충격적이기도 했다. 중국과 대만의 영향력과 힘 차이가 실감 나할 수 있었다.수업 중에 이문기 교수님께서 2024년 초에 있었던 대만의 총통 선거의 배경과 중요성에 관해 설명해 주셨다. 부총통으로 재임하던 민진당의 라이칭더가 당선되었고, 이후에 양안 관계에 있어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긴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셨었다. 선거 이후 4월이 된 지금은 어떤 상황인지, 전문가들은 라이칭더의 당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이 결과가 한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추가로 자료를 찾아보았다.결과에 대해 더 찾아보니 민진당의 라이칭더가 당선되었으나, 함께 치러진 입법위원 선거에서는 민진당이 과반 의석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국민당 또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정국의 안정성에는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역시나 중국은 민진당의 재집권에 대해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라이칭더는 양안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계속해서 밝혔지만, 동시에 당선이 된다면 가장 먼저 시진핑과 대화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은 대만이 92컨센서스를 수용하지 않는 한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기에 양안 관계는 당분간 긴장 상태일 것으로 예상된다.대만 총통 선거는 아시아만의 이슈는 아니다. 선거 결과를 중심으로 미중 전략 경쟁의 구도는 재현되고 있다. 또한 올해 11월에는 미국 대선이 예정 되어있다. 따라서 바이든 정부의 경우, 대선 이전까지 양안 관계 문제가 심화되지 않길 바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대만이 오로지 독립적으로 주요한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러 국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양안 관계에 개입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이 있다. 일본 기업들은 대만 반도체 산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정부 또한 미국과의 관계를 위해서 대만 문제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앞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양안 관계를 넘어 아시아 공동체에 대해 알아가며 빼놓을 수 없는 국가가 있다면 미국이다. 냉전 시대부터 지금까지 아시아 여러 국가의 관계 속에서 미국을 빼놓고 설명할 수 중국 원칙에 동의하면서 양안 관계는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미중 화해는 UN에서 중화민국이 축출되고 중국만이 정부로 인정받는 결과를 불러왔다. 양안 관계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지금도 여전하다. 올해 초에 있었던 대만 총통 선거에 대해 자료를 찾아볼수록 미국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되었다. 총통 후보로 나온 모두가,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직접 미국에 방문하고 미국을 의식한 공약과 슬로건을 내걸었다. 국제적으로 대만은 중국으로부터 독립적인 국가로서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강대국인 미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이 취하는 전략적 모호성은 잘 작동해 왔다. 그러나 때때로 중국이 대만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과소평가하게 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양안 관계와 태평양 지역은 긴장과 불안감이 고조된다. 대만 국민들의 여론에도 전쟁이 발생할 경우, 미국이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기게 된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대만의 상황이 꽤 답답하게 느껴졌다. 한국과도 유사한 것 같다. 지정학적 요충지, 그러기에 더욱 패권 국가 사이에 끼어서 국가의 독립성이 흔들리게 된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중국에 비해 영토도 군사력도 약한 대만의 입장에서는 양안 관계가 국제적 문제로써 다뤄지는 것이 유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국제 정치라는 것은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 있을까? 크게 군사적, 경제적 측면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민진당의 집권이 이어지면서 양안 관계가 악화된다면 대만해협의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이는 곧 한국의 짐이 무거워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대만해협에서 군사적인 긴장이 고조된다면, 미국에도 중요한 문제로 작용한다. 이 상황을 북한은 기회로 여길 수 있다. 미국이 대만과 중국에 집중한다는 것은 북한에 대한 집중도는 하락할 수 있다. 이때를 틈타서 북한은 군사적 도발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조 수 없다. 이는 곧 한국이 양안 관계에 계속해서 집중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대만에는 반도체 파운드리 생산 업체인 TSMC가 있다. 이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생산 업체 중 하나이며, 민진당 정권은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 또한 반도체 산업이 주요 산업이기 때문에 민진당이 집권이 연장된 이 시점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의 수출과 국제 경쟁력에서 반도체 산업이 가지는 입지가 작지 않은 만큼 양안 관계의 변화 속에서도 주의 깊게 바라보고 대처할 필요성이 있다.2024년 대만 총통 선거는 끝났다. 그러나 갈등은 진행 중이다. 친미 성향이며 독립을 주장하는 라이칭더가 당선된 만큼 중국의 압박에 대한 우려가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만약, 친중 세력인 허우유이 후보가 당선되었더라도 중국이 요구하는 92 consensus 수용과, 일국양제의 수용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만의 수뇌부가 어떤 방향성을 추구하는가만큼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여론이기 때문이다. 전쟁을 불사하고서라도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하나의 중국에는 상당수가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다.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가 평화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완전한 독립을 통한 평화이든, 완전한 협력을 통한 평화이든지. 국민들은 평화를 원할 것이다. 분단국가에 살아가고 있는 국민으로서 나 또한 공감이 간다. 분단 상황임에도 평화로운 나날이지만,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때면 평화는 쉽게 깨져버린다.생각해 보면 아시아는 불안 요소가 많은 공동체이다. 분단국가인 북한과 한국, 미국과의 패권 경쟁의 중심인 중국, 한중일을 둘러싼 과거사 문제, 양안 관계, 중국과 홍콩의 문제. EU라는 연합을 중심으로 협력하고 있는 유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인 것 같다. 긴장이 고조되고 풀어지길 반복하는 아시아에 다시 한번 평화를 깨뜨린 신호탄이 있다면 아마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일 것이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경험했고, 그 이후로도 핵무기의 개발과 국지적인 군사 도발은 언제나 양의 발발로 인해 이 평화는 쉽게 깨질 수 있다는 불안함이 커졌다. 나 또한 처음 러-우 전쟁이 발발했을 때 불안감에 계속해서 뉴스와 상황을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시아에서 전쟁의 발발은, 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아시아 국가들은 다르다. 어느 정도의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역사도, 민족도, 추구하는 것도 다르다. 차이점이 있다면, 공동체 형성은 불가능한가?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공동체의 시작이다. 세계가 끊임없이 분쟁에 휩싸이는 이유는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나만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시아 공동체는 차이를 ‘인정’함으로 시작될 수 있다. 상호 이해의 노력은 공동체를 세워가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아시아 공동체가 형성되면, 차이는 오히려 공동체 안에서의 자유를 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앞으로 아시아 공동체를 꾸려갈 세대는 나를 비롯해서 지금 이 수업을 수강하고 있는 학생들이다. 물리적 국경은 분명히 현존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정보통신의 발달은 물리적으로 그어진 선을 넘어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된다. 어쩌면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국경을 넘어 서로를 더 이해하고 하나의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마무리하며, 첫 주차 수업에서 한용택 교수님이 말씀하신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내용이 생각난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일할 사람들은, 나와 다른 사람이 대부분이다. 서로의 차이점을 활용하는 것이 글로벌 리더에게 필요한 역량이다. 아시아 공동체 내에서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가지는 다양성은 미국의 세계적 기업보다 더 큰 혁신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나는 ‘아시아 공동체의 이해’ 수업을 시작으로 아시아를 공동체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제는 적용해 나갈 차례이다. 사소하게는 개인의 삶 가운데에서 다름을 인정하고 협력한다는 가치관을 적용할 것이다. 아시아 공동체를 나의 노력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다가올 공동체를 세우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세계의 정치 본다.
1. 서론
지구에 살아가는 인간 중 한명으로써, 나는 우주에 대한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아무래도 ‘인간과 같은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까?’ 혹은 ‘지구가 아닌 곳에서 인간은 생존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이다. 인류는 계속해서 우주 탐사에 도전하고, 특히 인류의 새로운 터전의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 다. 지구는 인류의 터전이지만 자원 고갈, 환경 오염과 같은 문제들은 우리의 시선을 새 로운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그런 인류에게 화성은, 태양계 내부에서 가장 지구와 비슷한 공간이다. 이러한 사실은 자연스럽게 인류를 화성탐사로 이끄는 것 같다.
2. 화성 탐사
일론 머스크로 인해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미국의 민간 기업인 Space-X는 ‘화성 식 민지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느껴질 수 있 지만 이 계획은 생각보다 현실적인 구상을 가지고 있다. 발사한 우주로켓을 다시 회수해 서 재사용함으로써 로켓 발사에 드는 비용을 감축하며 ITS(Interplanetary Transport System: 행성 간 우주선)을 만들어서 인류를 화성으로 이주시킬 계획이라고 말한다.